지금으로부터 거의 1년 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를 방문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해외 군사전문지 Naval News가 게재한 놀라운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능동전자주사배열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AMRAAM) 통합으로 시계 외 공중전 BVR이 가능한 FA-50 블록 20가 곧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기에 KKMD 331화 『(ADEX 2021 특집) 국산 AESA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로 BVR 능력을 갖추게 될 FA-50, F-16 부럽지 않다?』편으로 시청자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렸었죠.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FA-50 블록 20의 등장은 아직 “가능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AESA 레이더를 통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F-16의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FA-50에게 미국이 AIM-120 암람(AMRAAM) 통합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이 FA-50 블록 20의 등장을 의심스러워하던 사람들이 주장하던 근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제 나름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자료 조사를 한 결과,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미국산 AESA 레이더를 들여와 암람 통합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하여 국산 AESA 레이더와 통합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그래도 요원하기만 했던 FA-50 블록 20의 등장을 획기적으로 앞당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FA-50에 암람(AMRAAM)의 통합을 허용해 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정작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의 태도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브(Saab)가 만들었던 그리펜 C/D형에 AIM-120 암람의 통합을 허용해줬는가 하면 신형 그리펜 E/F에서는 암람의 통합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즉,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뜻인데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 혹은 어느 정도의 로비(Lobby)가 뒷받침 되었는지에 따라 통합 여부가 결정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게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한화 2조 3천억 규모의 군사 원조를 해주고 있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정비 및 수리를 지원하고 필요한 부품 등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데는 다음 차례가 폴란드일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또한 대 러시아 전선 최전방에 버티고 있는 폴란드의 요구에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462화, 463화를 통해 소개해 드렸던 폴란드 공군의 이레네우스 노박 준장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폴란드 공군이 왜 FA-50을 선택했는지는 이해가 되셨을 것입니다. 폴란드 공군은 현재 FA-50 PL에 AIM-120 암람 통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모른 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국내 군사전문지 밀리터리 리뷰 9월호를 통해 미국의 4대 방산회사 중 두 곳인 레이시온(Raytheon)과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이 FA-50에 AESA 레이더를 공급하겠다고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요. 록히드 마틴이 FA-50에 13%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까지 생각해 본다면 미국산 AESA 레이더와 암람이 통합되어 폴란드에 판매되는 FA-50을 통해 미국도 꽤 짭짤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밀리터리 리뷰가 AIM-9X 및 AIM-120을 FA-50에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미국 레이시온 관계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미 국무부는 이미 OK 사인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레이시온은 AIM-120 암람을 개발 및 생산하는 업체이기도 한데요. 다만, 미 국무부는 최신형이 아닌 AIM-9X 초기형과 AIM-120C에 대한 통합 허가를 해줄 것으로 보인다고 레이시온 관계자는 전하고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과 레이시온 혹은 노스롭 그루먼처럼 미국 방산기업들이 FA-50 PL 판매로 경제적 수익을 얻을 수 있고 FA-50 계열 전투기들 운용 국가의 상당수가 러시아나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국가들 예를 들어 폴란드와 필리핀 등이라는 사실도 통합 허가의 주요 이유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결국 AIM-9X 및 AIM-120 암람이 통합된 FA-50의 등장은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시계 외 공중전 BVR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멀리서 적을 먼저 찾아낼 수 있도록 매서운 ‘눈(eye)’ 역할을 해줄 우수한 레이더와 강력한 한 방을 먹여줄 수 있는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FA-50은 이 두 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우수한 공격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로 평가되어 왔는데요.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을 장착한 FA-50이라도 제대로 된 제공 작전을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밀리터리 리뷰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1970년대에 개발된 MiG-29가 러시아의 Su-35 같은 최신예 공중우세전투기들을 여러 차례 격추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전 활주로에서 분산 배치된 상황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나타나면 긴급 이륙해 순간적으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고 도망치는 Hit & Run 전술을 통해 수 많은 러시아 최신 전투기를 격추하고 있다. 즉, 공중전이란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니며 이륙준비 시간이 긴 복잡하고 비싼 전투기도 필요하지만, 단순하고 분산배치가 가능한 저가의 전투기도 전력 면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도출되었다.”
레이시온의 AESA 레이더 ‘팬텀 스트라이크(Phantom Strike)’와 노스롭 그루먼의 AN/APG-83 AESA 레이더를 축소시킨 콤팩트(compact) 버전이 FA-50 탑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미 알고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KF-16을 F-16V 사양으로 개량하는 과정에서 사업자가 BAE system에서 록히드 마틴으로 변경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이야기라 여기서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레이시온의 ‘팬텀 스트라이크’ AESA 레이더는 사업자가 바뀌기 전 KF-16V에 제시되었던 APG-79 AESA 레이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레이시온의 홈페이지를 찾아가 팬텀 스트라이크의 세부 스펙을 살펴봤습니다.
예전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FA-50 같은 소형 기체들은 발전기 크기도 작기 때문에 발전 가능한 전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FA-50에 장착되어 있는 Elta EL/M 2032 기계식 레이더의 경우 상당히 고가이며 스펙상 성능도 나쁜지 않은 편이지만 쓸 수 있는 전력의 한계 때문에 제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이시온 홈페이지에 기술된 ‘팬텀 스트라이크’ AESA 레이더의 스펙을 살펴보면 사용 전력은 동급 레이더의 65%에 불과하고 공기를 이용해 레이더를 냉각시키는 공랭식을 사용하고 있는데다 GaAS(갈륨비소)가 아닌 GaN(질화갈륨) 전력증폭소자를 사용하고 있어 무게 또한 동급 레이더보다 최대 80% 가벼운 45㎏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계식 레이더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면서도 일반적인 AESA 레이더의 50% 정도에 불과한 가격을 자랑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노스롭 그루먼이 제안하고 있는 AN/APG-83 AESA 콤팩트(compact) 버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으며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레이시온과 노스롭 그루먼의 경쟁 체제가 성립됨에 따라 KAI는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는데요. 보다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펼치고 있는 쪽은 레이시온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문제는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을 통합시킨 FA-50의 가격대가 너무 올라가지 않을까? 라는 우려에 있습니다.
국내 전문지 밀리터리 리뷰는 ‘팬텀 스트라이크’ AESA 레이더를 도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200만 달러, 현재 환율로 27억 정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계식인 Elta EL/M 2032 레이더의 가격도 이에 못지 않을 정도로 비싸다고 하니 결론적으로 레이더를 AESA로 교체하는 데는 비용이 크게 증가할 사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스롭도 레이시온이 제시하고 있는 가격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제안을 하기는 어렵겠죠.
문제는 FA-50에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을 실제 비행 소티(sortie)를 통해 통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될 것인가? 에 있습니다. 한때 밀리터리 리뷰는 암람 통합에 5,000억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었지만 제가 업계 관계자에게 알아본 바로는 2,500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요. 밀리터리 리뷰도 현재 2,500억 정도면 AIM-120 암람을 통합할 수 있는 것으로 고쳐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AESA 레이더와 AIM-9X 그리고 헬멧장착 조준장치(JHMCS)를 FA-50에 통합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모두 더한다면 결국 다시 5,000억 정도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밀리터리 리뷰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은 모두 폴란드에 수출되는 FA-50 PL 사양에 적용되는 이야기들입니다. KAI 안현호 사장이 폴란드 군사전문지 Defence 24와 인터뷰했던 내용에서도 등장합니다만 이 5,000억을 부담해야 할 주체는 폴란드입니다. 과연 폴란드는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요?
단순하게 계산해 봤을 때, 48대의 FA-50 PL을 개량하는데 5,000억이 들어간다면 대당 100억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FA-50 블록 10의 수출가격이 380억대로 회자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100억을 더하면 약 500억에 가까운 금액이 됩니다.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 FA-50 PL 48대 수출가격이 3조 9천억대로 언론에 알려지고 있는데 이를 단순 계산하면 대당 820억이라는 가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가격은 흔히 프로그램 비용이라고 말하는 군수지원 패키지 가격이지 대당 가격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체 가격만 이야기하는 유닛 코스트의 경우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이 인터뷰 도중에 했던 말에 힌트가 있는데요. 브와슈차크 국방부 장관은 FA-50 PL의 가격이 F-16 최신 사양인 F-16V의 절반 정도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통 7,000만 달러인 F-16V의 절반이라면 3,500만 달러, 현재 환율로 480억 정도가 됩니다. 밀리터리 리뷰가 예상하고 있는 가격과 얼추 비슷합니다. 물론 이는 예상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폴란드는 F-16V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F-16V의 70% 정도 성능을 낼 수 있는 기체를 구매할 수 있다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더구나 생산이 밀려 있어 언제 인도 받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F-16V이기도 했고요. 폴란드로써는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한 셈입니다.
오늘 했던 이야기들의 핵심을 3줄로 요약해 볼까요?
1. FA-50 PL이 폴란드에 판매되면서 록히드 마틴이나 레이시온 (혹은 노스롭) 같은 미국의 거대 방산업체들도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2. 이러한 수익적 요소 외에도 러시아나 중국에 대항하는 국가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FA-50에게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을 통합시켜주는 것은 미국에게 국제정치적 이익을 가져다 둔다.
3. AESA 레이더와 AIM-120 암람 그리고 AIM-9X 및 이를 운용할 헬멧장착 조준장치(JHMCS)까지 장착한 FA-50 PL(블록 20)의 가격대는 500억 미만이 될 것이며 현재 970억이 넘는 F-16V의 절반 가격으로 70% 정도의 능력을 낼 수 있어 높은 가성비의 핵심이 된다.
FA-50 블록 20의 500억이라는 가격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면 그보다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으며 자국 비용으로 FA-50을 블록 20버전으로 개량하겠다는 폴란드의 결정 덕분에 한국항공우주산업 KAI는 향후 상당 기간 동안 고급 경전투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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