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군사매체 Defence 24는 2023년 2월 6일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과의 방산계약에 왜 그 흔하디 흔한 절충교역 조항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라고 질문한 폴란드 인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폴란드 국방부의 답변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폴란드 국회의원이 그렇게 질문한 배경을 추론해 본다면 폴란드 국민들 중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Defence24의 이번 기사를 번역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오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을 주고 있는 ‘폴란드 현지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폴란드 국방부는 지금까지 생소했던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량의 방산장비를 들여오는 이유와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Defence24 같은 군사 전문매체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었다면 언론에 노출되기 힘든 민감한 정보까지 공개하고 있죠. 따라서 Defence24가 알려주는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 현황이 폴란드 정부 입장에 가장 가까운 동시에 팩트에 근접할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읽으시면서 ‘기본계약(framework agreement)’과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 사이의 차이점에 유의하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K2 주력전차의 경우 폴란드와의 기본계약은 분명히 1,000대 도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K2 주력전차 180대에 한해서 실무 차원의 행정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Defence24는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될 나머지 K2PL 버전까지 합쳐서 1,000대가 도입될 것이라는 내용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K2PL 버전에 대한 행정협정을 마무리 짓는 작업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Defence24는 K2 주력전차뿐만 아니라 K9 자주포와 K239 천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기사 번역을 보시고 K방산 도입에 대한 폴란드 국방부 및 정치권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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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국방부는 대한민국과 방산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절충교역(offset) 조항 사용 가능성의 근거가 되는 국가안보상 주요 이익의 존재 여부에 대한 평가과정이 누락되었고 따라서 절충교역(offset) 조항이 활용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폴란드 국방부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여러 무기들을 구매하기로 한 결정은 폴란드 국방력 강화를 위한 긴급조치의 일환이었으며 국토방위법을 준수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폴란드 국방부가 선택한 법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폴란드 인민당(PSL) 소속 국회의원 파베우 베이다(Paweł Bejda)의 질문에 대응하여 국방부 차관보인 보이치에흐 스쿨키에비치(Wojciech Skurkiewicz)는 대한민국 측과 K2 주력전차, K9 자주포뿐만 아니라 K239 다연장로켓과 FA-50 경전투기 등을 구매한 계약과 관련하여 국가안보상 기본이익(PIBP)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평가과정은 없었다고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폴란드 방위산업계가 군사 장비들을 정비 및 지원하고 자체 능력으로 생산하거나 현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구축하기 위한 도구로 이해되는 절충교역(offset) 조항의 허용 근거가 없었던 셈이다.
여기서 잠깐 수출대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식인 구상무역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절충교역에 대해 짚어보자면, 민간계약에서의 절충교역과 방산계약에서의 절충교역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현금이 오고 가는 대신 가치value가 교환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판매대금 중에서 일정액을 현물로 다시 구매하면 되는 민간 절충교역과는 달리 방산계약에서의 절충교역은 기술 이전 및 부품 역수출 등에 집중되는 직접 절충교역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방산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군용 물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간접 절충 교역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주
폴란드 국방부는 "대한민국 측과 체결한 계약은 국토방위법 시행과 관련해 국방부에서 진행되었던 분석 결과에 기반하고 있으며 폴란드 군의 잠재력을 시급히 강화해야 할 장단기적인 필요성과 직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폴란드 군 전력 강화 방안과 관련해 토의된 내용들을 긴급하게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안보상 기본이익(PIBP)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는 수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절차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가안보상 기본이익(PIBP)에 대한 평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공공조달법(Public Procurement Law)상의 표준 규정이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상의 기본이익(PIBP)? 도대체 그게 뭔가?
폴란드 군비청(AU)차관 미하우 마르치니악(Michał Marciniak)대령이 서명하고 군비청에 의해 발급된 '군사장비 획득 시스템에서의 보안 개념' 자료는 국가안보상 기본이익(PIBP)이 공공조달법에 명시된 표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럽연합의 법체계에 있어 상충되는 규정을 배제시키는 근거가 되는 '본질적 안보이익'의 개념은 좀 더 광범위하다. 또한 공공조달법 제12조 1항 1b에도 국가안보상 중요한 이익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폴란드 군비청(AU)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국가안보상 기본이익(PIBP) 평가가 수행되지 않은 경우라도 특정한 위협이 가시화되었을 때, 즉, 『단기간에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이 등장했을 때 상충되는 조항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 공세와 그에 따라 내려진 몇 가지 조치들, 예를 들면 앞으로 교체될 필요가 있었던 폴란드 장비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든지 폴란드 산업 생산력의 방향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쪽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들이 상충되는 조항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이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폴란드가 보유한 자주포의 일부가 대한민국의 K9 썬더로 대체된 덕분에 크라프(Krab) 자주포를 우크라이나로 공급할 수 있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크라프 생산 주문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크라프(Krab)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고 K9썬더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유럽연합으로부터 공동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폴란드 국방부가 언급한 국토방위법 조항은 2022년 4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이 본격화한 이후 발효된 것이다. 국토방위법 794조를 예로 들면 2023~2025년 동안 폴란드 군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할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향후 도입되는 K2 주력전차와 K9 자주포 모두 폴란드 통신시스템을 장착하고 K9 자주포의 경우 토파즈(Topaz) 사격통제시스템까지 탑재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K239 천무 다연장 로켓포 구매 계약을 제외한 계약 최초 단계에서 거의 90억 달러, 현재 환율로 11조 4천억에 이르는 대규모 행정협정이 주요 산업 패키지 없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2017년 전략방위검토(Strategic Defense Review)에서 자주포 크라프(Krab) 개발에 대해 권고했던 내용들처럼, 폴란드 방위산업분야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했던 결정들이 좀 더 일찍 내려졌더라면 그 동안 축적된 잠재력을 활용하여 대한민국과의 산업 패키지를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폴란드 국방부는 (대한민국 방산장비 구매에 관한) 기본계약을 단계별로 나눈다면 폴란드 방산업계의 참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직도입 되는 초기 장비가 아닌) 후속 장비를 주문하는 경우 폴란드 산업 잠재력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주문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으로부터 군사장비를 획득하는 경우 채택된 계약 체결 방법은 단계별로 나누어진 개별 프로젝트의 실행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또한 폴란드 국내에서 이루어지도록 계획된 광범위한 기술 이전 및 산업 잠재력 구축과도 관련이 있다. 그 결과 필수적인 작전 능력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폴란드 군은 상호보완적이고 다각화된 군수지원 수단을 얻게 될 것이다. 폴란드 국방부는 "이번에 체결된 대한민국과의 계약 내용에 위와 같은 사항들이 포함되었으며 향후 폴란드가 인수하게 될 추가적인 군사장비의 종류도 위와 같은 사항들이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산업계와의 다음 단계 협력을 위한 행정협정이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 정확히 언제 체결될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준비 과정에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세바스티안 흐웨바엑(Sebastian Chwałek) PGZ 회장은 지난해 K2 주력전차 제조업체인 현대로템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2023년 6월 현재, PGZ와 현대로템간의 컨소시엄은 이미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주
보이치에흐 스쿨키에비치 국방부 차관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궁극적인 계획은 폴란드 국내에서 K2PL 전차와 K9PL 자주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FA-50 계열 전투기를 위한 서비스 센터 역시 폴란드에서 운영될 예정이고요. 또한, K239 천무 다연장 로켓포를 미사일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체결된 기본 협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관련 조항은 대한민국과의 차후 행정협정에 명시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과의 방산 장비 거래 현황
지난해 대한민국으로부터 방산 장비를 공급 받기 위한 기본계약 4가지가 체결됐다. 현대로템이 제작한 K2 주력전차에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되는 K2PL 주력전차를 더해 총 1,000대에 달하는 주력전차 구매 계약과 한화디펜스가 생산한 K9A1 및 현지에서 생산되는 K9PL 모두를 합쳐 672문에 대한 구매 계약,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제작한 FA-50과 폴란드 버전 FA-50PL 경전투기 48대 구매 계약 그리고 역시 한화디펜스가 만든 K239 천무 다연장 로켓포 288문 구매 계약이 바로 그 4가지 기본계약이다.
양국간 기본 계약이 실무 형태인 행정협정으로 진전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탄약 및 물류 지원 그리고 훈련 패키지가 포함된 4조 3천억 규모의 K2 주력전차 180대, 역시 마찬가지로 탄약 및 물류 지원 그리고 훈련 패키지가 포함된 3조 규모의 K9A1 자주포 212문, 탄약 및 물류 지원 그리고 훈련 패키지가 포함된 4조 5천억 규모의 K239 천무 다연장 로켓 218문, 마지막으로 물류 지원 및 훈련 패키지가 포함된 12대의 FA-50이 직도입 되고 36대의 FA-50PL이 현지에서 생산되는 조건으로 총 48대의 FA-50을 3조 8천억에 구매하는 행정협정이 체결되었다. 2023년 올해 FA-50 1호기와 천무 다연장 로켓 발사대가 폴란드로 인도될 예정인 반면, K9 자주포와 K2 주력전차의 인도는 2022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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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23년 2월 6일 폴란드 군사 전문매체 Defence24가 게재한 기사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K2 주력전차 1,000대 도입이 확정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K2 주력전차 1,000대 도입은 잘못된 이야기다” 라고 말하는 것도 제대로 된 지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금액이 오고 가는 방산계약은 쉽게 결정될 성격의 계약도 아닌데다 부수적으로 처리해야 할 업무들도 산더미입니다. 국민들과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겠죠.
기본계약이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라면 행정협정은 중간중간 쉬어가는 휴게소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아예 출발부터 할 수 없지만 일단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안내를 따라 특정 휴게소를 몇 번 들리고 나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 나서 중도 포기해야 하는 잠재적 위험성 역시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잊으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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