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사전문 블로그 항공만능론(航空万能論)GF는 2023년 5월 10일 “호주 해군을 괴롭히는 헌터급 호위함, 프로그램 비용 다시 치솟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1996년 취역하여 노후화된 앤잭급 호위함을 대체하고 자국 조선업 인력을 보전하기 위해 헌터급 차기 호위함 선정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페인 나반시아, 영국 BAE 시스템이 수주전에 참가했고 결국 2018년 6월 BAE 시스템이 제안한 26형 호위함이 선정되었죠.
총 9척이 건조될 헌터(Hunter)급 호위함 사업은 350억 호주 달러, 현재 환율로 31조 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될 예정인데요. 단순하게 계산하면 헌터급 호위함 1척 건조 비용이 3조 4천억 원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헌터급 호위함보다 한 체급 더 크고 이지스 전투체계를 갖춘 세종대왕급의 건조 비용이 1조원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비싼 가격입니다.
여기 더해 일본 군사블로그 항공만능론은 호주 언론 WA today의 기사를 인용하며 헌터급 호위함 건조사업의 총 비용이 350억에서 450억 호주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헌터급 호위함 1척당 건조 비용은 무려 4조 5천억 원에 육박하게 됩니다. 헌터급 호위함 두 척이면 KF-21 보라매 개발비용이 나온다는 소리입니다.
비단 헌터급 호위함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재래식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인 어택급(Attack)을 조달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KSS-III 도산안창호급과 같은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임에도 불구하고 건조 비용이 3조를 넘었고 이마저도 계속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호주의 무기조달 사업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일본의 군사전문 블로그 항공만능론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습니다.
“제안된 설계들 중 성숙도는 가장 떨어지는 반면 위험성은 가장 높았던 26형 호위함 설계를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했다는 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어설픈 의사결정 과정은 다른 나라 정부기관이나 민간기업이었다면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게다가 철저한 예비심사 없이 설계를 선택해 놓고서는 차례차례 요구조건을 추가해 기존 설계를 파탄시키는 것은 물론 추가 작업이나 스케줄 지연에 의한 프로그램 비용의 급등을 부르는 것이 호주 해군의 나쁜 버릇이다.”
호주와 비슷하게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을 들여 국내 부품과 기술만으로 무기를 조달하는 바람에 『방산업계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일본의 군사블로그에서 분석한 내용이라 더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지만 호주의 무기 조달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비슷한 사례들이 자주 발견됩니다.
2010년 호주 육군에 제시된 K9 자주포의 경우도 좋은 분위기로 사업이 진행되다가 호주의 국방예산 문제로 사업자체가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요.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2019년 Land 8116이란 이름으로 자주포 도입 프로그램이 부활되었고 결국 K9 썬더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보급장갑차 10대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계약을 다시 맺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오늘 번역할 기사를 함께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원래 창설이 예정되어 있었던 두 번째 K9 자주포 연대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보수정당 대신 정권을 잡게 된 호주 진보정부는 450대 도입하려 했던 보병전투장갑차를 129대로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죠. 한화디펜스는 그야말로 원 투 펀치를 연달아 맞은 셈입니다. 그래도 이미 전례가 있었던 만큼 다시 정부가 바뀌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호주이기도 합니다.
호주 보병전투장갑차 도입 사업과 관련해 외신을 검색해 보니 2023년 4월 21일 미국의 군사전문지 Breaking Defense가 게재한 기사가 나름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어 번역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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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대망의 정책 문서에서 구체화된 광범위한 전략적 변화의 일환으로 차기 보병전투장갑차(IFV) 구매 숫자를 450대에서 129대로 대폭 삭감할 예정이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유발하고 있는 주요 전략적 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호주는 지상전 대신 바다 위에서 적을 상대하는 해상 전력투사(power projection)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Breaking Defense가 미리 살펴 본 Defense Strategic Review의 내용에 따르면 조달 사업 진행에 있어 많은 변화들이 보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보병전투장갑차(IFV) 조달 숫자의 대대적인 삭감이다. 노동당 출신 전직 국방부 장관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와 지금은 예편한 앵거스 휴스턴(Angus Houston) 전 호주 방위군 최고사령관이 공동으로 작성한 기밀해제 버전의 문서가 호주 현지 시간으로 다음 주 월요일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에 도입되는 차기 보병전투장갑차(IFV)는 호주 육군이 운용하고 있는 구형 M113을 대체할 계획이었다. 완전 무장한 6명의 전투 요원들을 탑승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새로운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는 30㎜ 주포와 원격 사격 통제 체계(RCWS) 그리고 스파이크(Spike) 대전차 미사일 런처 등으로 무장되어 있다.
Land 400 program을 통해 도입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범위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밝혀진 차기 보병전투장갑차 조달 숫자는 많은 사람들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치고 있었던 대한민국 한화 디펜스뿐만 아니라 경쟁자였던 독일 라인메탈로 하여금 이번 사태의 여파를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한화는 호주가 2021년 12월 10억 호주 달러(AUD)로 구매한 K9 자주포를 생산하기 위해 이미 빅토리아주 질롱(Geelong)에 공장을 투자한 상태여서 다소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한화 디펜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 시간으로 오늘 아침 일찍 호주 ABC 방송은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던 두 번째 K9 자주포 연대는 아마도 창설되지 않을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 외 다른 조달 변경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 LAND 8710 Phases 1-2 – 지상군 상륙을 위한 상륙용 주정(舟艇)의 신속한 도입과 규모 확장의 필요성
• LAND 8113 Phases 2-4 – 장거리 정밀 타격체계(HIMARS)의 신속한 도입과 규모 확장의 필요성
• LAND 4100 Phases 2 – 지상 기반 대함 타격 무기체계의 신속한 도입과 규모 확장의 필요성
앤서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호주 총리는 지난 몇 달 동안 (호주 무기체계 조달사업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지난 11월 호주가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체계 그리고 무장 드론을 포함한 각종 드론 조달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알바니즈 총리는 호주 대륙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기갑장비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호주 육군의 군사교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통상 "북부 전략(northern strategy)"으로 알려져 있는 호주 육군의 군사교리에 대한 알바니즈 총리의 조롱은 (바다만 잘 지킨다면) 그 누구도 호주의 취약한 급소를 공격할 수 있을만한 능력을 지닌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도를 보면 호주 대륙 위로는 인도네시아가, 아래로는 뉴질랜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같은 영연방 국가이며 인종적 구성도 비슷한 뉴질랜드와 호주는 서로 반목할 일이 없지만 인도네시아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래서 호주 육군은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북쪽 지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북부 전략Northern strategy’를 수립하게 된 것이죠. 역주)
"퀸즐랜드 중부에서 우리가 지상전에 휘말리는 일이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없습니다." 알바니즈 호주 총리는 말했다.
물론 모든 국가에서 작성하는 이른바 전략문서들은 곧 정치문서들이기도 하다. 호주 정부가 편찬한 Defense Strategic Review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 교체된 알바니즈 정부는 기자들과 공유한 자료에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돈을 방위비로 쓰겠다고 선언했던 스콧 모리슨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Breaking Defense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2022년 8월 현재 호주의 무기 조달 프로그램은 방위 예산을 24%나 초과해서 편성되었다. 알바니즈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스콧 모리슨 정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32년 혹은 2033년까지 따로 예산을 편성하지도 않고 도합 420억 호주 달러, 현재 환율로 37조 4천 억에 이르는 방위비를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방위비 내역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신호국(Australian Signals Directorate)을 위한 새로운 사이버 장비 관련 지출이 최소 80억 달러 포함되어 있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3월 REDSPICE(Resilience, Effects, Defence, Space, Intelligence, Cyber and Enablers)라고 명명된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호주판 국가안보국(NSA) ASD 역량의 극대화를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실행했다고 밝힌바 있다.
스콧 모리슨 정부는 또한 GWEO(Guided Weapons and Explosive Ordnance Enterprise) 프로그램을 위해 322억 달러, 현재 환율로 28조 7천 억을, AUKUS Pillar 2 프로그램을 위해 19억 달러, 한화 1조 7천 억을 투자하기로 약속했었다.
(GWEO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 영국, 호주 세 나라가 결성한 새로운 군사동맹 AUKUS의 창설과 더불어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호주에 유도무기 생산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공장을 설립하기로 약속한 일입니다. 호주는 GWEO 프로그램을 통해 유도무기 생산기술을 습득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한 유도무기들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습니다. 역주)
앤서니 알바니즈 정부는 성명을 통해 국방부가 Defense Strategic Review에 의해 권장되고 있는 전쟁 수행상 필요 능력들을 분석하고 그런 능력들을 보유하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전체 비용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려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알바니즈 정부는 스콧 모리슨 정부가 출범시킨 프로젝트들 중 일부는 즉시 연기, 축소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전면 취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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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23년 4월 21일 미국의 군사전문지 Breaking Defense가 게재한 기사 “Aussies plan massive armored cuts; review charts shift to power projection (기갑전력 대폭 축소를 계획하고 있는 호주, 새로운 전략 구상은 해상 전력투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기사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원래 450대로 계획되어 있던 보병전투장갑차 도입 숫자가 거의 1/4 수준인 129대로 삭감되었고 K9 자주포 생산숫자도 원래 계획보다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호주 현지 질롱에 K9 자주포 생산을 위한 시설을 만들며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있던 한화 디펜스 입장에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아마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론해 봅니다. Breaking Defense가 지적하고 있듯이 한 나라가 구상하는 전략문서는 곧 정치문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치와 방위산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호주의 국방 프로그램은 너무 방만하게 운영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호주의 강성 노조도 여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지적대로 지나친 강성 노조가 무시 못할 요소로 작용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무엇보다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국방도 제대로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화 디펜스가 생산하는 AS-21 레드백과 K9 자주포의 호주 수출이 여의치 않게 된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지만 배가 산으로 가는 호주의 무기 조달 프로그램 역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KKMD 554화 『Angus Topshee 해군중장 직격 인터뷰: 캐나다가 대한민국 KSS-III 도산안창호급을 필요로 하는 이유!』 편에서 인용된 캐나다 언론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국방 프로그램에는 항상 거대 방산업체들의 로비가 작용을 하고 그 결과 최선은커녕 차선도 되지 못하는 제안들이 선택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두 푼이 아닌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용이 투자되는 국방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결정들은 자칫 경제적으로나 방위 전략상으로나 국가 이익에 커다란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군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알바니즈 정부의 선택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게 있어 만에 하나 중국이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장면이 나타난다면 그 무대는 육지가 아닌 바다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해군력에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얻어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과연 30년 이후의 미래 전장을 생각하는 해군 전력을 건설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30년 후 KKMD 시즌 X에서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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