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항공우주산업(KAI)가 만들고 있는 국산 전투기 FA-50이나 KF-21이 진정한 의미의 국산 전투기라고 할 수 있는가? 전투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이 수입산이며 국내 기술로는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들며 이렇게 비판하는 시청자 여러분들도 꽤 자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늘 KKMD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대한민국의 항공기 엔진 기술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주제를 생각한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항공기에 관한 기사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외국 사이트 aerospace-technology.com에서 2019년 10월 1일 한화 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항공기 엔진 전문부품업체 EDAC을 3억 달러, 한화 3,500억의 가격으로 인수했다는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10월 24일에 다녀온 국제해양방위사업전 MADEX에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부스에서 만난 고참 엔지니어와 나누었던 국산 전투기 엔진 제작 가능성에 대한 30분에 가까운 대화가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유튜브 채널 KKMD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라고 소개 드린 다음 인터뷰를 했는데요.
시청자들이 국산 전투기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동시에 많은 비판을 하는 부분이 바로 국산 엔진개발 여부인데 과연 국산 기술로 전투기 엔진을 만드는 것이 가능은 한지? 가능하다면 언제쯤 일지를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할 것이라고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여쭤본 질문인데 의외로 상세한 부분까지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2019년 10월 1일 aerospace-technology.com에 게재된 기사 내용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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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한화 그룹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항공 엔진 부품업체인 EDAC 테크놀로지스를 약 3,500억에 인수했다.
두 회사는 6월 10일 EDAC 테크놀로지스의 지분 100%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는 미국 정부 내 규제 당국 및 관련 행정 당국으로부터 필요한 승인을 받은 후에 이루어졌다.
EDAC 테크놀로지스의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벤 애덤스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와 협력한다는 것은 우리 회사의 인력, 공정 개발 및 제조 능력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지금 EDAC은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와 공동 운명체로써 만나게 될 성장 스토리에 대해 매우 들떠 있는 상태이다. 앞으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와 연대하여 제트 엔진 제조시장에서 서로의 입지를 좀 더 넓힐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은 '항공기 엔진 제조업계의 글로벌 파트너'들 중에서도 선도적인 넘버 원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EDAC 테크놀로지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으로 운영되며 한화 그룹이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하는 항공기 엔진부품 제조시설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이 거래는 또한 한화의 미국 시장 진출도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EDAC 테크놀로지스 인수로 인해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의 생산품 포트폴리오가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이며 고정익 및 회전익 항공기의 엔진 부품을 대량 생산하는데 필요한 복잡한 공정에 있어 수십 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의 역량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CEO는 언급했다.
"EDAC 테크놀로지스가 OEM 고객 및 중요 공급망 네트워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1979년 한화항공은 항공기 엔진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는 8,600여 개의 가스터빈 엔진을 조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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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EDAC 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주요 고객은 미국 GE와 프랫&휘트니(P&W) 등 쟁쟁한 엔진 제작사이며 첨단 항공기 엔진에 들어가는 일체식 로터 블레이드(IBR, Integrally Bladed Rotor)와 케이스 등을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비즈니스 코리아에도 이번 합병을 다룬 기사 내용이 있어 발췌해 보면 “미국 P&W와 GE 등의 세계적 엔진제조사의 인접 거점에서의 수주확대 및 제품 포트폴리오 등의 확장이 가능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제품의 고난이도 가공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향후 국제공동개발(RSP) 분야에서 탑-티어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요소인 설계·개발 및 기술 역량 강화는 물론 미국 현지 사업 확대 플랫폼을 구축하는 효과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FA-50 파이팅 이글과 KF-21에 쓰이는 엔진을 만드는 곳이 바로 GE이고, F-22와 F-35에 쓰이는 엔진을 만드는 곳이 바로 P&W입니다. 그런 곳에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를 그것도 미국에서 합병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무래도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국제 해양방위 사업전(MADEX)를 방문했다가 마침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부스를 발견한 것이었죠. 해양방위 사업전이다 보니 부스에 전시되어 있는 엔진은 함대함 미사일과 함대지 미사일에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말씀 드린 내용처럼 엔지니어 한 분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한화가 EDAC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인수를 통해 한화의 엔진 제작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것이며 언제쯤이면 국산 전투기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제 질문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였습니다.
먼저 제게 함대함 미사일 엔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하기를 현재 대한민국 엔진 기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엔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함대함 미사일 엔진을 5배 정도 크게 제작하면 미국 텍스트론사에서 만드는 소형 경전투기 스콜피온에 쓰이는 4천 파운드 출력의 엔진이 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한 가지 알고 계셔야 할 사항은 같은 경전투기라도 우리나라 FA-50에 쓰이는 GE F-404엔진의 출력은 1만 7천 775파운드로 텍스트론 스콜피온의 Honeywell TFE731 엔진의 출력보다 4배 이상 강합니다. 그만큼 FA-50의 심장은 동급 중에서도 아주 강한 녀석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KF-21은 쌍발 엔진을 쓰는데 GE F-414 엔진은 평상시에 14,440파운드의 출력을 내고 애프터 버너를 작동시키면 23,000파운드까지 출력이 올라갑니다. 이런 엔진을 2개 장착하게 된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4천 파운드 출력의 엔진으로는 국산 전투기인 FA-50이나 KF-21에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적어도 3배 이상의 출력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전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서라면 2030년까지 4천 파운드 출력보다 훨씬 더 높은 출력을 가진 엔진을 만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 엔지니어의 이야기대로라면 현재 우리나라의 엔진 제작 기술은 최상위 엔진 제작 업체보다 2단계 정도 떨어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적 문제 이외에도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한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존 업체들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신규 업체의 진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얼마 전 한화 에어로스페이스가 베트남에 항공기 엔진부품 공장을 세웠는데요. KF-21 사업에서 인도네시아가 무리한 기술 이전요구를 하고 있는 것과 연관시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도네시아에 핵심 기술이 이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대형 엔진 제작업체들도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모든 부품을 직접 만드는 대신 외부에 수주를 주고 일정 수준의 기술까지는 이전해 주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면 단칼에 거래선을 바꾼다
라고 말입니다. 만약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도 GE나 P&W에게 무리한 기술 요구를 하거나 독자적인 엔진을 만들겠다고 들이댄다면 그들은 바로 모든 엔진부품 제작외주를 중지시킬 것이라는 소리죠.
우리나라도 우리의 이익을 지키려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 똑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KF-21의 핵심기술 같은 중요 기술들은 국방과학연구소와의 계약에 의해 정부의 허가 없이는 기업이 마음대로 거래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처럼 돈과 힘을 앞세워서 기술 훔치기를 하던지 아니면 소련 해체 때처럼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첨단 분야일수록 후발 주자가 역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를 어느 정도 자체 무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덕분에 우리나라는 첨단 기술국가를 향한 막차에 탑승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입장에서 전격적인 자금 및 인력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향후 10년 안에 상당한 수준의 항공기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한화가 실제로 그런 행보를 보인다면 지금까지 한화에게 일을 맡겼던 대형 엔진업체들이 바로 견제를 들어올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가 최근에 개발한 엔진이 있는데 이런 문제로 외부에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귀띔해 주시더라고요.
그 다음 문제가 바로 KF-21에서도 등장했던 규모의 경제 문제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 모두 없다고 가정하고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강력한 항공기 엔진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화 측 계산으로는 최소 2,000대 이상의 엔진을 팔아야 이익이 생기는데 엔진 2,000대를 팔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군대와 정부 기관이 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하고 민간 항공업체들이 애국심을 발휘해서 도입한다고 해도 1.000대 이상의 엔진을 해외에 팔아야 하는데요. 이미 안정성과 신뢰성이 확립된 엔진을 도외시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엔진을 도입하는 나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현실적인 시장성 판단의 문제입니다.
국토가 넓은 나라들의 항공 산업이 발전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수 수요가 많기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대형 민항기 시장은 미국 보잉과 프랑스의 에어버스가 거의 주도하고 있고 중소형 민항기는 브라질의 엠브라에르와 캐나다의 봉바르디에가 주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도 국토가 넓고 내수가 충분하기 때문에 항공 산업 발전에 유리한 편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내수 수요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30분간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지니어와 나눈 대화의 핵심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자체 고유의 전투기 엔진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엔지니어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이제는 이해되십니까?
기술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규모의 자금과 인력 투자가 필요하고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들의 온갖 견제와 방해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 찍히면 지금처럼 부품을 외주하는 주문도 다 사라지겠죠. 또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만한 방법도 찾아내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무조건 국산 엔진만을 고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국산 엔진만 고집했다면 FA-50이나 KF-21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사업이었을 테니까요. 엔진 가격이 전투기 가격의 6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엔진을 팔아먹을 수 있으니 미국의 방산 업체들도 별 말 없이 도움을 줬다는 점도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FA-50이나 KF-21 처럼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그러한 플랫폼들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체 기술이 높아질수록 로열티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생산비용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남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제 값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의 이윤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후속 군수지원 등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킨다는 전략이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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