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무리한 차관(!)까지 내주면서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판매한다고 비판한 SBS 기사: 팩트 체크 1,2,3!
요 며칠 새 전 세계 군사 전문지들은 K9 썬더의 이집트 판매 계약 소식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어떤 기사부터 골라서 번역해 볼까를 고민해야 할 정도였는데요.
마침 러시아 군사 전문지인 VPK가 K9 Vajra에 몹시 흡족해하고 있는 인도 역시 200대의 K9 썬더 추가 구매를 원하고 있어 올해 3월쯤에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올렸고 미국의 군사 전문지 Defense News도 이집트가 왜 프랑스 자주포 시저(Caesar) 대신 대한민국 자주포 K9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러시아, 미국 해외 기사를 번역하고 있던 와중에 전혀 뜻밖의 제목을 달고 있는 SBS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요. 바로 “K-9 수출 쾌거? 이집트, 한국 수출입은행 돈 빌려 산다” 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였습니다.
SBS가 보도한 기사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집트가 자국 돈이 아닌 대한민국 수출입은행의 돈으로 K-9 자주포를 구매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우리 정부가 이집트에게 대출을 해주고 그 돈으로 K9 자주포를 구매하도록 유도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SBS는 KF-21에 참여했지만 분담금 지불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차관을 현물로 갚은 러시아의 예를 들며 이집트라고 돈을 제때 갚는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둘째. 이번 이집트와의 계약에서 K9 썬더를 엄청난 헐값에 판매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아무리 읽어봐도 헐값에 팔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나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방위사업청은 이번 계약 규모가 17억 달러, 한화 2조원 이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물론 방산제품들은 유닛 코스트와 프로그램 코스트가 별도로 존재하며 비슷한 버전에 비슷한 물량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 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 판매 금액이 나와있다면 K9 썬더 및 K10 탄약보급장갑차 같은 지원 차량이 몇 대 정도 판매되었는지를 계산하면 대략적인 가격을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SBS 기사는 초도 물량만 한화 디펜스가 생산하고 나머지 후반 물량은 이집트 현지에서 생산하는 계약 조항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3가지 사안에 대해 하나씩 짚어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들께 맡기고요.
먼저 우리 정부가 수출입 은행을 통해 이집트에게 대출을 해 준 뒤 K9 거래를 성사시킨 부분에 대해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SBS의 지적은 정확합니다. 잘못하면 돈을 떼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이집트 같은 개발도상국들과 방산 거래를 할 때 대출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키는 관행은 국제적으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집트 공군은 프랑스 다쏘의 라팔(Rafale)을 24대 운용 중이며 추가로 30대를 더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라팔 계약을 할 때 이집트 정부에게 4억 유로, 한화 5,400억 정도의 차관을 빌려주었는데요. 이는 매출 대금의 80%에 가까운 금액이었습니다. 프랑스 일부 언론들도 SBS와 똑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이집트 정부가 제때 돈을 갚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냐는 것이죠.
이에 대해 프랑스의 밀리터리 전문 매체들은 지금까지 프랑스가 이집트에게 방산물품을 판매하면서 처음 차관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이집트 정부가 차관 상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오히려 이집트 정부가 차관 이행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객관적 근거를 밝혀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죠.
SBS 기사는 “다른 나라 정부에 돈 빌려주고 그 돈으로 우리 물건 사도록 할 수도 있을 텐데 적어도 국산 무기 수출 과정에서는 드문 일”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해외 밀리터리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방산거래를 하면서 차관(소프트론)을 제공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KKMD를 통해 소개해 드린 적도 몇 번이나 있죠.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위험성은 상존하지만 수입국의 현금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거래의 규모를 키울 수 있고 방산물품의 특성상 일단 군수지원체계가 성립되면 수많은 부수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K9 썬더를 도입한 나라들이 K10 지원차량이나 각종 포탄과 예비 부품을 구매하게 되고 운용 유지비 차원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주력전차로 K2 흑표를 고려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한국경제신문은 2012년 6월 13일 기사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나가파사급 잠수함과 고등훈련기 T-50I를 판매하면서 수출입 은행을 통해 1조 5천 억이라는 돈을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대출해주었던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때 역시 수출금액의 80% 정도를 대출해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이번 K9 자주포 거래에서도 80%의 정부 대출이 있었지만 이를 매우 드문 일이라고 보도한 SBS의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2061330521
두 번째 팩트 체크입니다. SBS는 방사청이 K9 자주포를 헐값에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개발국으로써 1,300대 이상 실전 배치한 대한민국 육군이 도입하는 가격과 비슷하게 아니면 그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를 했다면 ‘후려친 가격’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도입 가격이 40억대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인도는 100대에 6억 4,600만 달러로 대당 75억 선에서 구매를 했습니다. 호주는 K9 30대에 K10 15대 등의 기타 군수지원을 포함한 가격으로 1조원을 지불했고 어림잡아도 인도가 구매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이는 표준 버전의 K9을 원했던 이집트와는 달리 호주가 최신 버전의 K9을 원했기도 하고 호주는 현지법인이 생산을 도맡기에 개발비와 인건비 등이 추가되는데 비해 이집트는 현지에서 조립 정도의 공정만 담당해 이 정도의 가격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한국일보는 밝혔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656038
자, 그럼 이집트 계약을 살펴봅시다. 미국의 군사 전문지 Defense News는 기사에서 이집트가 2조원에 약 200대 정도의 K9과 수십 대 정도의 K10 탄약보급장갑차와 지원차량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언론 VPK는 인도 역시 200대 정도의 K9 구매를 원하고 있으며 예상 금액을 이집트와 비슷한 2조원 가까운 금액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계산의 편의성을 위해 단순하게 우리 육군의 도입가인 대당 40억으로 계산해보면 2조원의 가격을 채우기 위해서는 도합 500대의 K9 자주포와 K10 탄약보급장갑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국 군사전문지 Defense News는 분명 자주포 200대와 지원차량 00대 사이를 오갈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집트에 수출된 K9 자주포의 가격이 대한민국 도입가의 최소 1.5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인도가 구매해간 금액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금액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팩트 체크입니다. SBS 기사는 이집트가 K-9 자주포를 수입하면서 후반 물량 대부분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유리한 조건을 따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SBS 기사 일부를 발췌해 보겠습니다. 『수출입은행 대출에 현지 생산까지…… 이집트는 속칭 꽃놀이패를 쥐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가격까지 많이 깎아줬다는 후문입니다.』
이집트가 초도 물량을 제외한 후반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계약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팩트입니다. 하지만 현지 생산 협정을 맺었던 것은 이집트만이 아닙니다. 인도 역시 현지 생산을 하고 있고 호주도 현지에서 생산합니다. 심지어 터키는 K9의 기술을 이전 받아 생산한 T-155 ‘프르트나’(Firtina)로 해외 수출까지 도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집트 계약 건에 있어 현지 생산이 문제가 된다면 앞에서 언급한 계약까지 모조리 문제 계약이 된다는 뜻입니다.
업계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기 수출국이 갑(甲)인 세상이 아니고 무기 수입국이 갑(甲)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이죠. SBS는 차관까지 제공해주고 현지 생산까지 해주며 성사시킨 계약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동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후발 주자로써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 한계의 한 단면입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볼꼴 못 볼꼴 다 보고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의 수고와 노력을 정치적 견해와 개인적 편견이라는 프레임으로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 군사 전문지 VPK와 미국의 군사 전문지 Defense News가 게재한 K9 썬더의 이집트 수출에 관한 해외 기사는 376화에서 번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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