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발발했던 돈바스(Donbass)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 군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던 존재가 바로 러시아의 포병 전력이었습니다. 152㎜ 대구경 포탄을 앞세운 러시아 포병 전력 앞에 수 많은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죠.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은 싸울 의지를 잃기는커녕 민간 전문가들과 합동하여 러시아 포병 전력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대신 우크라이나의 포병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우크라이나 포병대의 우버(Uber)’ 아르타(Arta) 포병용 지리정보 시스템(GIS)이었습니다.
크름(러시아식으로는 크림)반도 합병이나 돈바스 전쟁에서는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던 러시아 포병 전력이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열세였던 우크라이나 포병이 어떻게 러시아를 몰아붙일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대한민국 포병 전력의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 소련을 따르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포병의 구성이나 운용 교리는 러시아와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2022년 10월 12일 폴란드의 군사 전문지 Defence24가 게재한 기사를 잠깐 살펴보고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
미국 유마(Yuma)에 있는 성능 시험장에서 대한민국이 만든 K9A1 자주포의 시범 사격 행사가 개최되었다. K9A1 자주포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포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이번 행사는 155㎜ 고폭탄 M795에서부터 최신형 로켓 보조탄 XM1113 RA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국산 포탄들과 대한민국이 만든 K9A1 시스템 사이의 호환성을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 행사에는 미 육군과 동맹국에서 초청된 60명 이상의 고위급 인사들도 함께 참여하여 K9A1의 성능을 직접 목격했다.
이번 시범 사격 행사는 다음 세 가지 주요 이벤트로 구성되었다.
1) K-10 탄약보급장갑차를 통한 155㎜ 포탄과 모듈식 장약 재보급 과정의 자동화를 시연하는 이벤트
2) K9A1의 사격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미국산 M795탄을 탑재한 채 15초간 3발을 연속 발사하는 급속사격모드와 3분 동안 분당 6발을 발사하는 최대발사속도 모드를 시연하는 이벤트
3) K9A1의 로켓 보조탄 XM1113 RAP 미사일 발사를 시연하는 이벤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격 위치에 도착한 뒤 몇 분 내로 일제 사격을 실시하고 즉시 진지를 이탈하는 K9A1 시스템의 "사격 후 진지 이탈(shoot & scoot)" 능력도 함께 시연되었다.
K9 썬더와 K-10 탄약보급장갑차는 이번 시범 행사를 통해 미국산 포탄들과 완벽한 상호 운용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확장된 사정거리 및 정확성 그리고 우수한 사격 속도를 보여줌으로써 공동연구개발협정(CRADA)이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을 성공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고 한화 디펜스 USA 사장 겸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존 켈리가 말했다.
XM1113 RAP은 K9A1의 52구경장 포에서 발사될 때 50㎞ 이상의 거리를 날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155㎜ 사거리 확장 포탄이다. 다른 대부분의 사거리 연장탄들과 비교해 봤을 때 거의 10㎞ 이상 비약적으로 늘어난 사거리를 지니고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사거리 확장 로켓 보조탄 XM1113 RAP은 원래 미 육군의 최신 자주포인 M109A7과 XM1299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탄이다. 하지만 K9A1은 XM1113 RAP을 발사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비(非) 미국산 자주포 플랫폼이 되었다.
미 육군의 고위급 인사들은 K9A1 자주포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향후 이들이 장거리 로켓 보조탄 XM1113 RAP을 사용하는데 큰 관심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유마(Yuma) 성능 시험장에서 시범 사격을 했던 K9A1 자주포들은 워싱턴에서 개최된 2022 AUSA 국방 전시회에 전시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
지금까지 2022년 10월 12일 폴란드의 군사 전문지 Defence24가 게재한 기사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K9 썬더가 얼마나 우수한 자주포인지는 이 기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데요. K-10 탄약보급장갑차에 의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포탄 및 장약의 자동 재보급, NATO 표준탄과 미국 신형 포탄들도 거뜬히 소화해 낼 수 있는 범용성 그리고 자주포 특유의 신속한 ‘사격 후 진지 이탈(Shoot & scoot)’ 능력 등이 이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주포들에 대한 해외 외신들과 국내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현재 우크라이나 군이 운용하고 있는 자주포나 견인포들 중에는 서방에서 지원받은 크라프(Krab)같은 현대식 플랫폼들도 있지만 구 소련 시대에 만들어진 구형 플랫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국내 군사전문가들 모두 우크라이나 포병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을 펼치고 있는 배경으로 서방에서 제공하는 정찰 및 정보 자산과 포병용 지리정보 시스템(GIS) 아르타(Arta)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신속한 ‘사격 후 진지 이탈(Shoot & scoot)’이 가능한 자주포와 다연장 로켓포들의 효용성이 속속 입증되고 있는데요. 선제 공격을 받았을 때 포병전의 기본은 대포병 레이더를 사용하여 신속하게 사격원점을 특정한 후 반격 수단을 선정하고 사격 제원을 전송하여 반격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 러시아 포병의 경우 이 모든 과정이 수행되어 실제 반격이 가해지는데 17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GIS Arta를 활용하는 우크라이나 포병들은 짧으면 1분, 길어도 2분 정도의 시간만 필요하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K9 썬더의 사촌격이라고 할 수 있는 크라프(Krab) 자주포나 하이마스(HIMARS) 다연장 로켓포들이 지니고 있는 ‘사격 후 진지 이탈(Shoot & scoot)’ 능력까지 가미되면 러시아 포병들이 반격을 하고 싶어도 반격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국내 군사전문지 밀리터리 리뷰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포병의 지휘체계는 다음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정찰 위성이나 정찰기 그리고 전방 관측반(FO)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들은 1차적으로 합동참모본부가 운용하는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에 집결됩니다. 합동지휘통제체계는 수집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한 후 적군 타격에 가장 적합한 화력 수단을 선정하게 되는데 이 때 육군의 화력체계가 선정되면 공격명령과 표적정보가 『육군전술 C4I 지휘체계』 이하 ATCIS로 이전됩니다. ATCIS는 다시 K9 자주포 대대나 K239 천무 다연장로켓 대대 중의 하나를 골라 『대대 전술 컴퓨터시스템』 이하 BTCS에 사격명령을 내리게 되고 BTCS는 필요한 사격제원을 산출하여 K9 자주포나 K239 천무에 전달, 실제 포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현재 대한민국 포병들은 정보수집 →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 육군전술C4I지휘체계(ATCIS) → 대대 전술 컴퓨터시스템(BTCS)을 거쳐 최종적으로 K9, K239를 통해 공격을 진행한다는 뜻인데요. 처음 본 사람은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한 과정이며 적 발견에서 초탄 발사까지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의 17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이지만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사격지휘체계 ‘앱(App)’ GIS Arta는 이 모든 과정을 겨우 1분에서 2분 사이에 처리해버립니다. 이 15분 내외의 차이가 결국 오늘날 러시아 육군이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의 주요 원인이었던 셈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포병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지휘부들 역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포병 사격지휘체계 ‘어플리케이션’ GIS Arta는 어떻게 이런 효율성을 달성해 낼 수 있었을까요? 제가 방금 GIS Arta를 ‘앱’이라고 표현을 한데 대해 이상하다? 스마트폰도 아닌데 왜 자꾸 앱이라고 부르지? 라고 의아하게 생각하셨다면 핵심을 제대로 짚으신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러시아나 대한민국 포병들이 운용하고 있는 사격지휘체계들은 포병 전용으로 개발된 586 컴퓨터들을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방 관측반(FO)가 포병전용 관측제원 입출력기인 DMD와 전술 무전기를 사용해 사격제원을 포병대에 전송하게 됩니다. 이는 아군에 대한 오폭을 방지하고 보다 정확한 포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반대급부로 17분에서 20분에 달하는 시간을 요구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포병 사격지휘체계 GIS Arta는 육군 전술 C4I 지휘체계(ATCIS)와 대대 전술 컴퓨터시스템(BTCS)의 임무를 한꺼번에 실행하고 스마트폰 같은 민간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국이나 NATO 정보 자산 혹은 우크라이나 병사 스마트폰에 의해 제공된 정보들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가장 적합한 공격 위치에 있는 아군 포병대를 호출함과 동시에 표적에 대한 사격제원을 제공하여 즉시 타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마치 카카오 택시나 우버(Uber) ‘앱’처럼 배차를 원하는 승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택시를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기에 우크라이나 현지에서는 ‘포병대의 우버(Uber)’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GIS Arta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포병대가 지닌 강점 중 하나는 ‘분산 배치’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K9 자주포 포대의 경우 포병사격통제용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사격지휘차량(FDC)을 중심으로 6대의 K9 자주포가 뭉쳐서 함께 움직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포병들은 일종의 네트워크 개념인 GIS Arta를 활용해 자주포를 여러 곳으로 넓게 분산시켜 포격을 수행했습니다. 당하는 러시아군 입장에서는 대포병 레이더를 가동시켜 사격원점을 추적해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할지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당연히 화력을 집중시키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응 속도가 느린 러시아 포병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반격을 시작했을 때 우크라이나 포병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포병대가 추진하고 있는 대대 전술 컴퓨터시스템(BTCS)의 개량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대략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적 발견에서 초탄 발사 대응까지 소요되는 10분이라는 시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보수집, 분석 및 사격지휘 기능이 자동화, 고도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포병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임무 컴퓨터나 관측제어 기구가 필요하지 않고 상용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민수용 제품으로도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GIS Arta가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반대로 보안이나 재밍에 취약하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육군이 추구하고 있는 개량형 BTCS 일명 BTCS A2는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GIS Arta 방식이 아니라 미국이 개발한 『첨단 야포 전술 데이터 시스템』(AFATDS)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개량 내용으로는 데스크탑 형태를 취하고 있던 전술통제기를 노트북 형태로 소형화시키고 1990년대 개발된 586급 CPU를 윈도우 10급 이상의 CPU로 교체하며 다수표적 동시처리 기능을 추가하고 최적의 사격 방법을 추천하는 등 사격지휘 기능을 고도화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보안 강화를 위해 연동방식은 민수용이 아닌 국방정보기술표준을 적용하고 있고요.
BTCS A2로 성능이 개량되면 3차원 디지털 지도를 통해 적군과 아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표적에 맞춘 최적의 공격방식을 추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사용해야 할 탄종 및 사격 횟수도 자동으로 계산해주죠. BTCS A2는 포대를 구성하는 자주포 각각에게 표적을 할당해 줌으로써 우크라이나처럼 K9 자주포의 분산 운용이 가능해져 생존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BTCS A2가 초탄 발사시간을 어느 정도로 단축시켜줄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추종하고 있는 미국의 AFATDS의 성능으로 미루어보자면 현재 10분에서 3~4분 정도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BTCS A2로 사격지휘체계의 성능개량을 끝낸 대한민국 포병대는 러시아를 쩔쩔매게 만든 우크라이나 포병 수준의 지휘체계를 확보하는 동시에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가히 세계 최정상급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밀리터리 리뷰는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이 포스팅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OgcWYlALYl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