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경남 창원에 위치한 현대로템 공장과 한화디펜스 공장에서 출고된 K2 흑표 주력전차 10대와 K9 썬더 자주포 24문이 두 달 남짓 만에 폴란드에 도착했다고 폴란드 군사전문지 Defence24가 6일 보도하며 하역된 K2 주력전차 및 K9 자주포 사진 4장을 게재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12월 9일에 Defence24는 또 하나의 기사를 게재했는데요. “Korea or Nothing. The Only and Last Chance to Boost the Polish Industry (한국 아니면 답이 없다. 폴란드 산업을 부흥시킬 유일하고도 마지막인 기회)”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대한민국 방산제품 K-디펜스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외에도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과 정비 불량으로 인한 KF-16 전투기 추락 사고 등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주 국방 능력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불안하다는 걱정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저도 업계 소식통과 현역으로 군에 복무하고 있는 소식통 등을 통해 듣는 이야기들도 있고요.
“대한민국 정말 많이 컸다” 가슴 뿌듯한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대한민국, 아직 갈 길이 머네”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대한민국군과 방산업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제대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좀 더 세부적인 수준과 완성도를 높여야만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되겠죠. 대규모 전면전뿐만 아니라 ‘무인 드론’ 등으로 대표되는 소규모 국지전도 상정한 군사교리로 수정해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고 수정된 군사 교리에 따라 육군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물적, 인적 자원들을 공군과 해군에게도 적절하게 분배하여 밸런스 있는 전력구조 개편을 고려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종종 듣고 있습니다.
폴란드 군사 전문 매체 Defence24가 12월 9일 게재한 기사 번역을 통해 폴란드가 대한민국 방산업계의 능력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자주국방의 모범 사례로 대한민국을 지칭하면서도 앞으로 있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 협정에서 폴란드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내용이라 몇 차례로 나누어서 포스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넓은 이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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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체들에게 있어 전 세계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고객이 되었다. 이번 주 우리가 목격한 K2 주력전차 및 K9 자주포 인도는 폴란드 안보 강화를 목표로 하는 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인도식은 대한민국-폴란드 양국 간 군사 협력을 향한 길을 닦아주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방위 산업에 관련된 여러 기회들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폴란드는 앞으로도 K-디펜스의 중요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K-디펜스가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주요 산업 협력 중심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란드가 그러한 산업 협력 중심지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방위산업에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K2 주력전차 10대, K9A1 자주포 24문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장비들의 초도 물량 인도는 어쩌면 폴란드 군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장대한 군 현대화 프로그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주력전차, 자주포, FA-50PL 경전투기 그리고 K239 천무 다연장로켓포 등 대한민국과 체결한 계약의 총 가치는 135억 달러, 현재 환율로 한화 17조 1천 억에 육박한다.
기술 이전과 주력전차 820대 및 자주포 460문에 대한 추가 계약 체결도 예상되며 K239 천무 다연장로켓포 시스템도 추가적으로 그 뒤를 이을 것이다. 폴란드-대한민국 합작 거래의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폴란드 방위산업계와 경제가 현재 대한민국과의 거래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비록 초도 물량은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도입되는 장비들과 수명주기 동안 필요한 관리(LCC)에 더 많은 비용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의 기본 합의서도 역시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폴란드 산업계가 대한민국과의 협력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제조 능력과 수출 잠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 수출을 통해 얻어진 이윤은 국방 사업을 착수하는데 필요한 높은 수준의 자금 조달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국내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과의 협력은 방산제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며 폴란드는 이 기회를 반드시 활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폴란드 국방부는 무리한 일정을 채택하여 폴란드 방산업계를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만들었고 한국과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우선 관련 제조 능력을 확립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폴란드 국방부의 우선순위는 신형 장비들을 최대한 빨리 실전 배치시키는데 있지만 이는 폴란드 방산업계가 원하는 우선 순위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둘째, 한국인들과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며 (필요한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폴란드-한국 양국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의 산업 협력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수출 경제에 잔뼈가 굵은) 한국인들은 협상 테이블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타날 것이며 이는 협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한국과의 협상에 임하는 폴란드 팀들 역시 매우 강력하면서도 뛰어난 경쟁력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폴란드 정부가 새로운 산업 능력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시키고 있는 과정에서 현재 가장 약한 고리로 남아있는 존재가 바로 PGZ 그룹이다. 한국인들이 (폴란드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로지 폴란드 방산기업 PGZ 그룹하고만 협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만약 폴란드인들이 근시안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춰 국내 방산기업들의 노하우(know-how) 기반을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는 도전에 정면 대응하지 않는다면 예상되는 결과는 뻔할 뿐이다.
노르웨이, 루마니아,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 그리고 핀란드를 포함한 다른 중유럽, 북유럽 국가들 또한 대한민국 방산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나라들의 방위산업 역시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폴란드가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대한민국 K-디펜스의 유럽 허브(hub)는 폴란드가 아닌 체코 공화국이나 노르웨이 혹은 슬로바키아에 설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런 경우 최선의 시나리오를 따른다고 해도 오로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비를 정비할 수 있는 능력만이 폴란드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PGZ 그룹 입장에서 봤을 때, 제조 능력을 광범위하게 확장시키는 동시에 수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방산 프로그램에 대한 변화된 태도가 필요하다.
레오파드(Leopard) 2PL 프로그램의 지연과 예상치 못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PGZ 그룹의 지도부는 실레시아(Silesia) 지역 산업 시설들과의 사업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고 여러 노동 조합들이 PGZ 그룹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대신 그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이는 꽤나 걱정스러운 부분인데 문제가 되는 Leopard 2PL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보자. Leopard 2PL 프로그램의 마감 일자라는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원래 마감 시기는 2021년이었지만 현재 예상되는 마감 시기는 2027년으로 최소 6년 이상 지연되었다. 지난 수년 동안 PGZ 그룹은 Leopard 2PL 프로그램과 관련된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했던 산업 구조적 변화를 시행하지 않았다. 만약 이와 유사한 관행이 제거되지 못한다면 폴란드-대한민국 파트너십과 관련된 야심 찬 계획들은 다시 한번 이익집단들과 정면 충돌하게 될 것이다.
(실레시아 지역은 독일과 폴란드가 번갈아 실효 지배했던 지역으로 예로부터 광맥이 풍부해 산업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레시아의 독일계 산업시설들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영국 공군의 공습을 적게 받았고 덕분에 산업시설들의 상당 부분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 영토가 된 실레시아는 전후 폴란드 산업 및 경제 복구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독일과 가까웠던 탓에 독일의 영향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Defence24는 실레시아 지역 산업체들이 주도한 레오파드(Leopard) 2PL 개발 프로그램이 지지부진하며 난맥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PGZ 그룹이 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독일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주)
우리는 대한민국이 국제 방산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립해 나갔던 방식을 떠올려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무기 수출국으로서 점점 더 큰 야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야심은 현재 진행형으로 커져가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Defense News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2021년) 대한민국의 방산 수출액은 70억 달러, 현재 환율로 8조 9천억 수준으로 역대 최고 금액이었으며 이는 2020년 수출액과 비교했을 때 두 배로 증가한 수치였다. 올해인 2022년 대한민국의 방산 수출액은 예정된 계약이 실제 체결되는 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라 최소 수십억 달러(수조 원)에서 최대 200억 달러(25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다루고 있는 K-디펜스의 성장세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SIPR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방산 수출액은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비해 177% 증가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서 2.8%로 성장하여 터키와 이스라엘을 앞질렀다. SIPRI가 산출한 2021년 데이터에는 폴란드와 성사된 2022년의 거래는 고려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 모든 것들이 면허 생산(license-manufacturing) 프로젝트와 산업 협력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 한국인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독점적인 솔루션들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K2 블랙팬서의 경우 K1 주력전차를 개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여러 자료들은 미국 산업계가 K1 주력전차 플랫폼 개발에 광범위하게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광대하기 이를 데 없는 유럽 시장을 정복하고 싶어한다. 폴란드를 포함한 셀 수 없이 많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위 예산을 늘리기로 결정했으며 현대화된 장비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방산업계는 연구 및 개발(R&D) 잠재력에서는 매우 뛰어난 편이지만, 냉전 종식 이후 급격한 방위 예산 삭감과 줄어든 국내 주문량 때문에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어 있는 상황이며 결과적으로 해외에서 발생한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서구 여러 나라들은 기술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대량의 장비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세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이나 방산 관련 국내 중장비 조달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었다.
다음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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