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이상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기존의 전투 교리들 중 그 유효성이 다시 검증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전쟁 초기 FGM-148 재블린(Javelin) 같은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치면서 한때 전차 무용론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평가 받던 ‘골리앗’ 러시아 공군은 1/12 수준에 불과한 ‘다윗’ 우크라이나 공군을 압도하지 못하고 제공권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빠른 제공권 확보에 성공했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렇게 길어지지도 않았겠죠.
4,200 대 280. 동원할 수 있는 군용기 숫자로만 보아도 러시아 공군과 우크라이나 공군 사이에는 엄청난 전력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공군이 러시아 공군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방에서 제공한 정보 감시 및 정찰(ISR) 자산은 물론 이와 효과적으로 연계된 지대공 방공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가깝습니다. 이를 뒤집어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공격 입장에서 봤을 때 효과적인 정보 및 탐지체계와 연결된 대공 방어망을 공중에서 무력화시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강의 공군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시에 어디서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가 절실한 미국에게 있어서도 적의 대공 방어망을 무력화시킨다는 목표는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세 종류의 무기체계를 개발하게 되는데요. AGM-88 HARM으로 대표되는 대(對) 레이더 미사일과 AGM-158 JASSM으로 대표되는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그리고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MALD 기만용 무인드론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특히 최근 중국이 장거리 공격 능력을 갖춘 강력한 대공 방어체계를 완성하여 미 해군의 접근을 거부하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펼치게 되면서 『효과적인 대공 방어망 배제 수단』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 상황인데요.
평소 알고 지내는 업계 소식통으로부터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만용 무인드론 MALD를 다루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련 해외 자료를 찾으며 공부를 하다 보니 기만용 무인드론 MALD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 항공전문매체 Aviacionline이 2023년 5월 12일에 게재한 기사 “The ADM-160B MALD in Ukraine: The Most Advanced Decoy on Earth is Not a Weapon, but a Game Changer (ADM-160B MALD가 우크라이나에 등장했다: 지구에서 가장 진보된 이 미끼용 드론은 비록 무기는 아니지만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를 번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
2023년 5월 12일,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ADM-160B MALD 기만용 무인드론의 잔해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등장했다. 정말 ADM-160B MALD가 맞는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견된 "마치 미사일처럼 보이는 이 무기"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MALD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무인 자율비행 드론으로 미 공군이나 연합군 항공기의 레이더 반사파를 모방할 수 있는 독특한 기능 덕분에 적의 통합 방공 시스템 (IADS)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도록 교란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폭발성 탄두를 탑재하지 않고 있는 탓에 공격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공망 제압 작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기만용 무인드론의 진화: ADM-160A부터 ADM-160X까지
1990년대 후반에 고안된 기만용 무인드론 MALD의 개념은 걸프전 동안 배운 교훈, 특히 강력한 레이더로 유도되는 대공 방어망을 침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해 형성되었다. 초기 모델인 ADM-160A의 경우 항속거리 부족과 송수신 능력의 한계 같은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고 예산 관련 문제도 있었다.
2009년에는 보다 진보된 ADM-160B가 공개되어 항속거리와 송수신 능력 모두가 향상되었다. ADM-160B의 혁신적인 레이더 반사파 증강 시스템(Signature Augmentation Subsystem: SAS) 능동형 레이더 증강 장치를 사용하여 다양한 항공기의 레이더 반사파를 모방함으로써 적의 대공 방어 시스템을 기만할 수 있다. 덕분에 감지된 위협을 식별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적의 대공 방어망을 취약하게 만들어 미국의 AGM-88 HARM이나 영국의 ALARM과 같은 대레이더(anti-radiation) 미사일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그러나 2016년 ADM-160C 혹은 MALD-J라고 불리는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서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이 신형 기만용 무인드론은 기존의 레이더 반사파 증강 시스템(SAS)에 더해 강력한 전자전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그 결과 양산에 성공한 최초의 대체형(Stand-In) 전파교란장치(Jammer)로 탄생하게 되었다.
당초 케르베로스(Cerberus)로 불렸던 ADM-160C(MALD-J)의 모듈식 전자전 능력은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전자전 시스템을 교환하여 탑재할 수 있었고 목표물에 더 가까이 접근한 채 배회하고 있는 상태에서 단독으로 혹은 짝을 지어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ADM-160C(MALD-J)의 최신 버전이 개발되고 있는데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더욱 향상시킨 MALD X와 미 해군의 작전 요구사항에 맞춰 설계된 MALD N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ADM-160B로 돌아가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떻게 ADM-160B가 우크라이나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ADM-160B의 진정한 가치는 저렴한 비용 대비 높은 효율로 영공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이 기만용 무인드론은 지금까지 F-16 또는 B-52H에서 운용되었고 향후 B-1B 폭격기에 통합될 계획이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F-16도 B-52H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에서 도대체 어떤 기종이 ADM-160B를 운용할 수 있었다는 소린가?
(해외 군사매체 Defense Industry Daily가 2018년 9월 27일에 게재한 내용에 따르면 ADM-160A의 가격은 3만 달러, 한화 3,8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미국의 군사매체인 Breaking Defense가 2015년 1월 23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ADM-160B 버전의 가격은 32만 2천 달러, 한화 4억 1천 만원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A버전과 B버전 사이에 거의 10배 정도의 가격 차이가 있다는 뜻이죠.
ADM-160 A버전과 B버전을 비교해 보면 항속거리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요. 구형인 A버전의 항속거리는 460㎞인데 반해 개량된 B버전의 항속거리는 920㎞로 두 배 정도 늘어났습니다. B버전의 최고 속도는 마하 0.9 정도로 A버전보다 조금 더 빠르고 목표물 위를 그냥 지나가버리는 A버전과는 달리 B버전은 목표물 근처를 배회하며 비행하는 능력까지 추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전파 교란 장치 Jammer까지 포함된 ADM-160C(MALD-J)의 가격은 4억보다 훨씬 비쌀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군은 이제 ADM-160B는 폐기하고 MALD-J(ADM-160C)로 모두 교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교체되고 있는 ADM-160B가 우크라이나에 등장했다는 것인데 ADM-160B가 우크라이나 MiG-29 펄크럼에 통합되었거나 ADM-160B가 이미 통합되어 있었던 NATO 소속 전투기가 비밀리에 우크라이나를 도왔을 것이라는 추론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주)
2022년부터 우크라이나 공군은 AGM-88 HARM을 MiG-29 전투기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ADM-160B도 이 과정에서 아주 비밀스럽게 같이 통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ADM-160B 버전이 이미 많이 생산되어 있어 재고가 충분했다는 점과 ADM-160C 개량형의 경우 구조가 훨씬 복잡해 통합 및 사용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구형인 ADM-160B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에서 ADM-160B가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은 아직 답할 수 없는 많은 의문점들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강력한 위력을 지닌 기만용 무인드론 MALD의 잠재력은 분명하다. 기만용 무인드론의 배치는 운용하는 쪽에게 상당한 전술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으며, 복잡다단한 현대 전투의 역학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
지금까지 해외 항공전문매체 Aviacionline이 게재한 기사를 통해 기만용 무인드론 MALD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MALD는 레이더 반사파 증강 시스템(SAS)를 통해 스텔스 전폭기 F-117 나이트호크부터 B-52H 스트라토포트리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항공기의 레이더 반사파를 복제하여 송출할 수 있습니다. MALD에 의해 적 방공망 레이더들이 활성화되면 AGM-88 HARM 대레이더 미사일을 발사하여 레이더 기지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미국과 전투를 벌이며 AGM-88 HARM에 의해 방공망에 큰 피해를 본 국가들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AGM-88 HARM이 레이더파에 반응한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레이더를 정지시켜 AGM-88을 무력화시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ADM-160B MALD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순간부터 레이더 화면상에 나타나는 수많은 점들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미끼(Decoy)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레이더를 가동해서 식별 및 공격을 하자니 AGM-88 HARM이 무섭고, 레이더를 끄고 있자니 적의 전투기가 자국 영공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는 형국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동식 방공 레이더망을 수시로 켰다가 끄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수많은 정보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급박하게 뒤섞이는 실전에서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다 수시로 켜고 끄는 과정에서 이동식 방공 레이더망이 가진 본래의 탐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최근 미 공군에 실전 배치되고 있는 최신형 MALD-J(ADM-160C)는 전자전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골치가 아플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1991년 걸프전 개전 초기, 이라크 군이 미국과 다국적군 전투기 수십 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추락한 것은 전투기가 아닌 기만용 무인드론이었고 격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라크 측 방공망 상당수가 AGM-88 HARM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후 미국은 방공망을 공습할 때마다 MALD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에서 ADM-160B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말은 러시아 방공망이 지금보다 더 큰 부담을 지게 되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ADM-160 기만용 무인드론 시리즈는 현재 F-16과 B-52H에 통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F-16에 ADM-160 시리즈가 통합되어 있다는 말은 KF-21 보라매는 물론 FA-50에도 통합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되죠. 게다가 AESA 레이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AGM-88 HARM처럼 레이더파를 추적해 따라가는 미사일들이 전파교란(Jamming)을 당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파교란에 강력한 저항성을 지니고 있는 GPS보정 INS 유도장치 및 적외선 유도장치, 종말단계 자동목표 인식장치 등을 갖추고 있는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의 전략적 가치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KEPD 350K 타우러스나 천룡(天龍) 장공지(ALCM) 미사일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천룡(天龍) 장공지 미사일은 타우러스보다 더욱 발전된 스텔스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 기만용 무인드론 MALD와 좋은 궁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놓고 보여주는 MALD를 먼저 발사하여 적의 시선을 끈 후, 천룡처럼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정밀 장거리 순항미사일로 방공망을 타격한다는 것이죠.
ADM-160 시리즈가 레이더파 복사 기능을 지닌 일종의 장거리 순항미사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자체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 추론 되는데요. 문제는 개발 및 생산에 필요한 비용일 것입니다.
제가 기사 중간에 역주로 언급했지만 ADM-160A의 가격이 3,800만원, ADM-160B의 가격이 4억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ADM-160A와 B버전의 성능 차이는 항속거리에 있다고 설명을 드렸는데요. 촘촘하지만 정밀하지는 못한 북한의 방공망을 대상으로 한다면 460㎞ 정도의 항속거리를 지닌 ADM-160A 사양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으로 서해를 넘보고 있는 중국 등을 염두에 둔다면 항속거리 920㎞의 ADM-160B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지닌 MALD가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군 KF-16이 AGM-88 HARM 대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며 ADM-160 시리즈들이 F-16에 통합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KF-16만으로도 MALD 기만용 무인드론 + AGM-88 HARM 대레이더 미사일 전술 시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향후 FA-50에 탑재할 수 있는 국산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국산 MALD가 개발된다면 공대지 작전에 특화되어 있는 FA-50의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죠.
그 외에도 머지 않은 미래에 5세대(5.5?) 스텔스 전투기 KF-XX가 등장하거나 한국형 중형항모 CVX에 탑재되는 KF-21 Navy까지 개발된다면 스텔스 장거리 공대지(함) 순항미사일 천룡(天龍)과 짝을 이룬 항속거리 920㎞의 기만용 무인드론 MALD의 전략적 가치는 몇 배로 상승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국내 항공우주업계 관계자가 MALD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HEZ03v94q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