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6일 미국의 군사 전문지 Defense News는 터키가 개발중인 신형 전차 알타이(Altay)에 한국형 파워팩을 장착하기로 결정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Mevlut Cavusoglu) 터키 외무장관과 대한민국의 강은호 방위사업청장관이 함께 회담하는 자리에서 서명된 매매 동의서(The letter of intent)에 의해 이제 한국형 파워팩의 터키 수출은 기업과 기업 사이에 논의되는 수준을 벗어나 정부와 정부간에 논의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한국형 파워팩 터키 수출 뉴스를 통해 제가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 싶은 부분은 첫째.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는 파워팩 수출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둘째. K2 흑표를 개발하면서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대한민국 파워팩 기술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분석해보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비록 방사청이 터키에게 한국형 파워팩의 수출을 허가하기는 했지만 파워팩 원천기술은 절대 이전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국가들 중에서 지상군이 사용하는 기계화 장비들, 예를 들면 장갑차나 자주포 그리고 주력전차의 핵심 구성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 차체, 각종 포 및 파워팩을 비롯한 구동체계와 사격통제체계들을 원스탑(one-stop)으로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번 한국형 파워팩의 터키 수출로 대한민국 역시 지상군 무기체계의 모든 것을 한번에 제공해 줄 수 있는 나라로 부상하게 되었으니 이는 분명 대한민국 기술역사의 쾌거이며 방산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것이 한국형 파워팩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과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터키 방산기업들에게 자칫 잘못하면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0월 26일 미국의 군사 전문지 Defense News가 게재한 “Turkey, South Korea sign deal for Turkish Altay tank (터키와 대한민국, 터키의 알타이 전차를 위한 파워팩 공급계약에 서명하다)”를 번역해 보고 나머지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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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터키 정부는 한국형 파워팩의 터키 수출에 대한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로써 대한민국 방산기업 두산 인프라코어와 S&T 중공업은 현재 터키가 개발 중인 토착 전차 알타이(Altay)에 국내기술로 개발된 엔진과 변속기로 구성된 한국형 파워팩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10월 22일에 체결된 이 협정은 메블뤼트 차우쇼을루(Mevlut Cavusoglu) 터키 외무장관과 대한민국의 강은호 방위사업청장관이 만난 자리에서 성사되었다. "이번 파워팩 계약 성사를 통해 알타이(Altay) 프로그램은 획기적인 발전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알타이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터키의 장갑차 제조업체 BMC는 이 신형 전차에 장착될 파워팩의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민국 회사 두 곳과 함께 전략적 계약을 협상해왔다. 협상된 계약 내용에 따라 대한민국 방산업체인 두산과 S&T Dynamics가 터키 알타이(Altay) 신형전차에 엔진과 변속 장치를 공급하게 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터키 조달청 관계자는 "한국형 파워팩 구매에 관한 이번 의향서(The letter of intent) 서명은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던 협상 내용을 정부간 계약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터키가 야심 차게 시작했던 신형전차 개발 프로그램 알타이(Altay)는 엔진과 변속기 및 장갑과 같은 중요한 부품들을 확보하는데 실패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지연에 직면하게 되었다.
터키는 알타이 전차에 독일 MTU사가 만든 엔진과 RENK 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팩을 장착하고 싶어했지만 독일 정부가 터키에 대한 무기금수(arms embargo) 조치를 내리면서 과거 몇 년간 진행되어 왔던 독일 제조업체들과의 협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정부들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터키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두산과 S&T 다이나믹스는 알타이(Altay)전차에 파워팩을 공급하고 이를 통합하는 작업도 함께 지원하게 될 것이다. 한국형 파워팩의 테스트 과정이 완료되고 별다른 이변이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18개월 이내에 두산 DV27K 엔진과 S&T 다이나믹스 EST15K 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팩에 의해 알타이(Altay)들이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BMC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BMC는 2018년 11월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알타이(Altay) 생산계약을 따냈다. 이 계약에는 최초 250대의 알타이 전차를 생산하고 알타이의 수명주기 동안 필요한 군수를 지원해야 하며 전차시스템 기술센터를 설치 및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계약 내용의 일부로서 BMC는 무인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알타이 전차의 후속형을 설계, 개발 및 생산하게 될 것이다.
알타이(Altay) 개발 프로그램은 T1과 T2 두 과정으로 분할되어 있다. T1 과정을 통해 250대의 초기 알타이가 생산되며, T2 과정은 보다 첨단화된 알타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터키는 최종적으로 1,000대의 Altay를 생산할 계획이며 그 다음으로는 무인 버전의 알타이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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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터키에게 있어 한국형 파워팩은 ‘최고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선택한 ‘차선의’ 선택일 뿐입니다.
2021년 1월 11일 해외 군사 전문지 Army Recognition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터키 BMC는 이탈리아의 엔진제작업체 Fiat/Iveco와 손잡고 바투(Batu)라는 이름의 자체 파워팩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유러파워팩을 개발하는데 1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고 대한민국 역시 원래 개발완료 목표 시한이었던 2012년을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원하는 성능의 파워팩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 시작된 터키 BMC의 파워팩 개발이 언제 완료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터키는 당장 자신들이 사용할 주력전차 개발을 위해서도 파워팩이 필요하고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주최하고 있는 주력전차 수주전에 참가하기 위해서도 파워팩이 필요한 입장입니다. 따라서 터키도 투(two)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국 파워팩 바투(Batu)의 개발은 계속 이어나가되 한국형 파워팩으로 급한 불을 끈다는 전략입니다.
1,500마력의 출력을 내는 두산 DV27K 엔진과 7,110km의 주행 내구성을 지닌 S&T 중공업의 EST15K 변속기로 구성된 한국형 파워팩의 전체적인 성능 그 자체는 독일 파워팩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거리 주행의 필수요소인 ‘내구성’에 있어 9,600km를 고장 없이 달릴 수 있는 독일 파워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죠. S&T의 EST15K 변속기는 7,110km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이상이 발견되고 말았으니까요.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터키 입장에서는 한국형 파워팩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사실상 없는 상황입니다. 외신들이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파워팩 수급을 위해 우크라이나와 일본과도 접촉했지만 무단 기술복제 문제 혹은 가격 문제 때문에 모두 실패하고 말았죠.
S&T 중공업은 비록 자신들이 만든 EST15K 변속기를 K2 흑표에 장착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꾸준하게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S&T는 DX KOREA 2020에 참가하여 그 동안 수입에만 의존했던 변속제어장치(TCU)와 변속장치(Range Pack), 정유압 조향장치(HSU) 그리고 유체감속기(Retarder) 및 브레이크까지 모두 국산화시켰다고 발표했는데요. 따라서 앞으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독일이 만든 유러파워팩 수준까지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지난 2021년 3월에 한국형 파워팩이 알타이(Altay)에 장착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발표되었고 터키는 한국형 파워팩이 주행 내구성 7,000km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문의했다고 합니다. 알타이는 K2 흑표의 전투중량인 55톤을 훨씬 초과하는 65톤의 전투중량을 지니고 있기에 K2 흑표에서 달성된 주행 내구성 7,110km가 알타이에서도 달성될 수 있을 지가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터키는 한국형 파워팩 샘플 2개를 요청하여 알타이에 시험장착 후 테스트를 해 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10월 26일 기사를 보면 그 결과가 만족스러웠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고요. 이번 협상을 통해 두산 인프라코어와 S&T 중공업은 무려 1,000대에 달하는 알타이 주력전차에 파워팩을 공급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회사 운영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K2 흑표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대로템에게 있어 이번 한국형 파워팩 수출계약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불의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터키 알타이(Altay)에 한국형 파워팩이 장착되어 개발이 완료되고 해외에 판매되기 시작하면 전제적인 성능으로 봤을 때 K2 흑표보다 한 단계 낮은 급의 주력전차로 인식이 되겠지만 터키는 그런 불리함을 가격 경쟁력으로 상쇄시키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국방기술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만 같은 중동 국가들은 대한민국 방산업체들에게 있어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시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이슬람 국가”라는 점을 내세우며 중동지역 무기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터키이기에 알타이(Altay)에 대한 파워팩 수출은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와 터키는 정치적으로 자주 부딪치고 있다는 점에서 알타이가 선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조심성은 필요한 법이죠.
개인적으로는 터키와의 방산협력은 한국형 파워팩을 국내에서 생산하여 완제품 형태로 판매하는 수준에 그쳐야지 절대로 현지 면허생산이나 기술이전 수준까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기술 유출이 가능한 현지 면허생산이나 기술 이전을 통해 터키에게 파워팩 관련 기술이 제공된다면 그들의 투(two)트랙 전략의 완성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곧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스스로 자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는 단순히 주력전차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K9 자주포의 해외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K9 자주포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터키 프르트나(Firtina) 자주포도 파워팩 문제로 해외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Defense News에 실린 기사의 뉘앙스로 봐서는 기술이전은 하지 않고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어 용기를 내어 방위사업청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솔직히 방위사업청이 일개 유튜버의 질문에 답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방사청 여러 곳에 전화를 넣어봤는데요. 어렵게 어렵게 K2 전차 사업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습니다. 계속 부재중이라는 안내음성만 들리더군요. 어쨌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위사업청인 만큼 국익을 앞세운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외신링크 https://www.defensenews.com/land/2021/10/25/turkey-south-korea-sign-deal-for-turkish-altay-tank/
이 포스팅을 유튜브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bV5xfPoGf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