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이후 현대 전투기 설계의 기본이 되는 공통된 특징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요소 하나를 고르라면 초음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고추력 기반 기동 전투를 설계이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전투기를 전문분야로 하고 있는 업계 전문가와 FA-50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미 공군이 FA-50 사양의 T-50A를 (미 공군은 TF-50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고등전술훈련기로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
전투기를 설계하는데 있어 마하 1.5~1.6의 속도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고 합니다. 항공역학(Aerodynamics)상 마하 1.6 이상의 속도에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전투기들의 민첩성이 오히려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F-35는 기동성과 민첩성에 있어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마하 1.6대로 최고속도를 제한하고 있으며 자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적기를 상대할 때는 뛰어난 항전장치를 활용한 우수한 탐지능력으로 더 멀리서 더 일찍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인 전투기도 있는데요. F-22 랩터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F-22 랩터의 익면하중, 즉 비행기의 무게를 날개 면적으로 나눈 값은 377 kg/m² 입니다. 이 익면하중이 낮을수록 우수한 기동성을 지니게 되는데 F-22 랩터의 익면하중은 F-15와 F-35의 그것보다 훨씬 낮습니다. 더구나 F-22는 추력편향(Thrust Vectoring)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어 마하 1.6 이상의 속도에서도 극강의 기동성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F-22 랩터의 진정한 무서움은 고도 6만 5천 피트 상공에서 마하 2의 속도로 5G 선회를 할 수 있는 기동성과 그에 따른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 능력에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5G 선회가 가능한 F-15의 속도와 고도는 마하 0.8 및 3만 5천 피트 이하입니다. 즉, F-22 랩터는 F-15보다 2배 더 높은 고도에서 2 배 더 빠른 속도로 F-15를 향해 내리꽂는 에너지 파이팅이 가능하다는 뜻이 되죠.
영상 제목에서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입니다.
오늘날 세계 각 공군들이 파일럿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시계 외 공중전(Beyond Visual Range: BVR) 전투 교리와 시계 내 공중전(within visual range: WVR) 전투 교리 모두 뛰어난 항전장치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이란 원래 세계 2차 대전 당시 높은 고도를 차지하여 충분한 위치 에너지를 보유한 전투기가 급강하하면서 위치 에너지를 가속도로 변환시켜 낮은 고도의 전투기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며 공격하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덕분에 유명해진 공식 E=mc² 다음으로 친숙한 것이 바로 뉴턴이 정리한 가속도의 법칙 F=ma입니다. 여기서 F는 힘(Force), m은 질량(Mass) 그리고 a는 가속도(acceleration)를 뜻합니다. 제가 문과 출신이다 보니 이 법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고 멋들어지게 설명하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공식을 변환시켜 질량(m)을 좌변으로 옮기면 F/m=a 라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따라서 전투기의 가속도(a)를 높이려면 좌변의 분자인 추력(F)을 높이거나 분모인 질량(m)을 줄여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전투기의 가속도가 빨라지기 위해서는 좋은 엔진을 사용하여 추력을 높이거나 기체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 되지요.
여기서 전투기의 고도, 즉 위치(h)는 중력에 의해 손쉽게 가속도(a)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즉, 위치(h)나 가속도(a) 모두 에너지에 해당된다는 뜻이며 F/m=h 라는 공식도 성립하게 됩니다. 따라서 추력이 높거나 무게가 가벼운 전투기는 상대방보다 더 높은 위치 에너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 위치(h) 에너지를 다시 가속도(a)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게 되죠.
아까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 이론이 세계 2차 대전에 처음 등장했다고 말씀 드렸다시피 원래는 근접 공중전, Dog Fight에 사용되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시계 외 공중전(BVR)에도 에너지 파이팅이 적용된다고? 고개를 갸웃거리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세대 이후의 현대 전투기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추력의 엔진이 탑재되어 있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수해진 항전장치들, 예를 들면 AESA 레이더나 LINK-16 같은 데이터 링크 덕분에 멀리서 적기를 탐색하고 장거리 대공 미사일 BVRAAM으로 교전할 수도 있게 되었죠.
이 때 전투기의 속도와 사격 방향에 따라 미사일 사정거리에 2~3배 정도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전투기의 속도 에너지가 미사일에 더해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미사일 발사 후 적기의 조준 위험 구역에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다는 이점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시계 외 공중전(BVR)에서 시계 내 공중전(WVR)으로 접어드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필연적으로 서로 몇 번의 미사일 공격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요. 이때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하게 되면 당연히 속도(에너지)는 줄어들게 됩니다. 회피 기동을 많이 한 쪽이 당연히 더 많은 에너지를 상실하게 되겠죠.
이때, 손실된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력 혹은 가벼운 무게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근접 공중전에 사용되는 AIM-9X 같은 적외선 유도 미사일의 추적을 따돌릴만한 에너지를 얻을 방법이 없어지고 결국은 격추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2차 대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공군들은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에 근거한 교전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시선을 FA-50으로 돌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FA-50의 기본이 되는 T-50에 대해 지금까지도 일부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고등훈련기치고는 너무 고사양이다” 라는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고등훈련기 중에 애프터 버너를 기본 사양으로 갖추고 있어 마하 1.5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종은 T-50밖에 없으니까요. 당연히 그만큼 가격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경전투기 시장에 나와 있는 러시아 Yak-130이나 Yak-130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 M-346 및 중국의 L-15는 모두 최고 속도가 마하 0.9 정도에 머무르는 천음속 전투기들입니다. 다만, 중국의 L-15는 옵션으로 애프터 버너를 장착할 수 있고 애프터 버너를 장착하면 마하 1.4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지 애프터 버너를 장착하게 되면 2천만 달러로 알려져 있는 L-15의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중국제 항전장치의 성능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라는 의문도 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시계 외 공중전에서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이 제대로 되려면 우수한 항전장치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등훈련기 겸 경전투기들 중에서 마하 1.5 이상의 속도 에너지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전방 전투기들을 상대로 그나마 대등한 수준의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을 펼칠 수 있는 기체는 FA-50 계열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밑줄 쫙~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고등훈련기 겸 경전투기』 기종들 중에서 찾아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AESA 레이더나 레이더 경보수신기 RWR 같은 항전장치들이 알려주는 정보들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서 대응하여 비행하는 계기 비행에 능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중조기경보기 같은 ISR 자산들의 도움을 받기 위한 데이터 링크의 탑재와 이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훈련과정도 필수가 됩니다. 멀리서 먼저 쏘고 먼저 달아나기 위해서죠.
그뿐 아니라 전자전 시스템이나 헬멧 장착형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전투 방법도 함께 익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5++세대나 5세대 이상의 능력을 지닌 전방 전투기들에 최대한 빨리 익숙해져서 최고의 효율성을 내고 싶다면 파일럿 양성 과정 후반에 이 모든 것을 갖춘 기체로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현재 미 공군의 경우 파일럿 양성 과정이 종료될 때까지 훈련생들이 제일 오랜 시간 탑승하게 되는 기종이 터보 프롭훈련기이며 각종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40년 묵은 훈련기 T-38 탈론을 탑승하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물론 T-38 탈론에는 에너지 파이팅을 훈련하는데 필요한 필수 장비들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T-7A 레드호크의 경우 F-35같은 5세대 전투기들과 유사한 디스플레이와 조종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하드 포인트가 전무하고 실전 같은 무장 훈련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고성능 레이더나 레이더 경보수신기 같은 각종 항전장치들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데이터 링크나 전자전 장치, HMD 등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저렴하게 비행 훈련만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기체라는 점을 보잉 스스로가 인정했죠.
그러다 보니 미 공군 수뇌부는 T-7이 도입되고 이를 통해 파일럿 양성과정을 수료한 훈련생들이라도 전방 전투기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 미 공군이 주창한 것이 바로 Reforge 개념인 것입니다.
Reforge 개념을 만족시키는 기체가 되려면 훈련기 역할도 하면서 에너지 파이팅(Energy Fighting)도 가능한 기체라야 합니다. 마하 1.5이상의 속도, 실제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하드 포인트의 탑재, 고성능 레이더, 데이터 링크, 전자전 시스템, 추가 연료탱크, 공중 급유기능 등을 갖춘 기종이 필요했고 그 결과 FA-50 Block 20 사양의 TF-50이 물망에 오른 것입니다.
록히드 마틴 대변인도 2021년 12월 14일 Air force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미 공군 교육훈련 사령부가 요구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TF-50은 경전투기 겸 훈련기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실제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하드 포인트 및 레이더 시스템 그리고 전자전 시스템, 전술 데이터 링크 및 다른 기능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미 공군과 록히드 마틴은 분명히 TF-50을 『경전투기』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해외 밀리터리 전문지 Jane’s는 2019년 9월 6일 기사를 통해 미 의회의 지원을 받는 군사 연구소에서 T-7A 레드 호크의 무장버전을 통해 미국 본토를 방어하고 F-15나 F-22 그리고 F-35 같은 첨단 4.5세대 및 5세대 전투기들은 더 위험한 환경의 해외에 파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고등훈련기인 T7A 레드 호크를 경전투기로 파생시켜 미국 본토에 대한 수세적 방어임무를 맡기는 방안을 미국도 고려했었다는 뜻입니다. 주력 전투기가 5세대 스텔스 F-35로 전환되면서 엄청난 금액의 운용 유지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 공군에게 있어 고등전술훈련기로 쓸 수 있고 경전투기로도 쓸 수 있는 저렴한 TF-50 같은 전투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옵션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상황을 대한민국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미국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적대국이나 군사 강국이 없으며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야만 본토를 공략할 수 있는 나라이기에 TF-50같은 경전투기로도 방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잠재적 적성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말이죠.
그런 지적에 대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야를 한정하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투기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 오늘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FA-50의 추가 도입을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FA-50의 추가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KF-21의 양산 시점이 10년 남은 현재 상황에서 결코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죠. 다만 FA-5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된 T-50이나 TA-50은 훈련기로도 경전투기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블랙 이글스가 사용하는 T-50B 12대를 제외하고서도 훈련기 사양인 T-50이 50대, 전술입문훈련기(LIFT) 사양인 TA-50이 22대 그리고 FA-50이 60대 실전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앞으로 추가 생산예정인 TA-50 사양 20대를 합치면 대한민국 공군은 무려 152대라는 숫자의 T-50 파생형을 보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며 이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지를 반드시 고민해야 만 합니다.
게다가 T-50은 2005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도 생산분은 KF-21이 양산되는 2032년이면 기체 연령이 27년에 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전에 T-50 계열들에 대한 전체적인 정비와 업그레이드 작업을 한번은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조만간 세간에 알려져 있는 『공군 전술기 400대 제한』 규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볼 예정입니다. 동시에 공군이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대를 생각했었다는 미국 구형 F-16들에 관한 이야기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관련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업계 전문가의 도움으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는 있었습니다. 『공군 전술기 400대 제한』에 대해 제가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전달해 드렸던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정정해야 할 필요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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