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기. 영어로는 Prototype이라고 불리는 기체의 임무는 다양한 종류의 극한 상황에 노출되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문제점을 찾아내는데 있습니다. 시제기 파일럿들은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테스트 비행에 임하며 고의적으로 기체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뒤 문제가 발생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대량으로 생산될 양산형 기체의 결함들을 줄여 나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탑승하게 될 파일럿들의 생존성과 임무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제기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일종의 “관리된 실패”로서 좀 더 안정적인 양산형 생산을 위한 시금석이 됩니다. 따라서 시제기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프로젝트를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시제기가 보여준 문제들을 얼마나 꼼꼼하게 체크해서 투명하게 수정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제기가 테스트 도중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전체 프로젝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개발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대한민국에 남아나는 개발자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관리된 실패”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개발자들의 의욕을 꺾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요. 있는 그대로를 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언론들이 되려 “관리된 실패”를 마치 방산비리처럼 오해하도록 만드는 기사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KF-21 보라매의 초도 비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일부 국내 언론들이 보여주고 있는 “일단 깎아 내리고 보는” 태도나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 행태에 대해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먼저 2022년 5월 26일 MBC가 보도한 『바람에 떨어지고 부딪치고‥'차세대 무인기' 다시 만들어야?』 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소개해 본 이후 시청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군사용 드론 전문 웹사이트 Drone Wars에 게재되어 있는 내용과 말레이시아 군사 전문지 Defence Security Asia가 2022년 5월 25일 중국이 만든 무인 전투드론 CH-4B에 대해 게재한 기사 내용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5월 26일 MBC가 보도한 기사를 요약해보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2015년 차기 군단급무인기(UAV-II)를 개발하고 4대의 시제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2016년부터 테스트 비행에 들어갔지만 7월 1대가 계측 장비 고장으로 추락했고, 같은 해 10월엔 브레이크 결함으로 또 다른 1대가 손상을 입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2대를 무려 5년 동안이나 보완하여 지난 2021년 8월에 다시 비행 테스트를 시도했으나 마지막 착륙 단계에서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 때문에 3번째 시제기 역시 파손되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MBC는 차기 군단급무인기 시제기 4대 중 3대가 추락했기 때문에 차기 군단급무인기의 전반적인 성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차기 군단급무인기에 대한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보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성능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죠. 즉, MBC와 방사청의 주장이 서로 상반된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시제기 1호기와 2호기가 테스트 도중 추락한 시점은 201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3호기가 추락한 시점은 무려 5년이 지난 2021년 8월이었고요. 즉, 한국항공우주산업 KAI는 차기 군단급무인기를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엠바고가 걸려있는 내용이라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5년이라는 긴 시간이 1, 2호기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수정하여 3, 4호기에 적용하는 데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개량 사항이 있었죠. 어쨌든 3호기는 1, 2호기와는 달리 성능상 문제로 추락하지 않았습니다. MBC도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 때문에 착륙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륙과 착륙시 발생할 수 있는 ‘돌풍’이라는 변수는 무인 전투드론 제작기술에 있어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게도 큰 난관입니다. MBC는 TV뉴스 영상 자막을 통해 “바람에 떨어지고, 부딪치고 착륙도 못하는” 차기 군단급무인기라고 조롱하고 있지만 그런 관점이라면 미국이 만든 유명한 MQ-1C 그레이이글이나 MQ-9 리퍼도 똑같이 욕을 먹어야 합니다.
영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군용 무인기 전문 웹사이트 Drone Wars에 게재된 내용을 살펴보면 2020년에만 약 70대의 군사용 무인드론이 파손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외부로 알려진 숫자가 이 정도이면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군사용 드론들이 파손되고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할 수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륙과 착륙 중에 손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하고 있는 차기 군단급무인기(UAV-II)와 가장 비슷한 형태와 체급을 지닌 무인기로는 무게 1.7톤의 미국 MQ-1C 그레이이글과 무게 1.3톤의 중국 CH-4B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Drone Wars에 언급되어 있는 MQ-1C 그레이이글의 손실 숫자는 17건이며 그 중 절반 정도가 이륙과 착륙 과정에서 손실된 것들입니다. 중국 CH-4B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 해외 기사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인기의 무게가 증가할수록 이륙과 착륙시 발생하는 사고도 늘어납니다. 무게 4.7톤인 MQ-9 리퍼의 경우에는 파손 케이스가 무려 72건으로 늘어나며 사고 중 1/3 이상이 이륙 및 착륙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KAI가 5년 동안 준비해서 비행 테스트에 임했던 3호기가 마지막 착륙과정에서 “돌풍”으로 파손된 것이라면 성능상 결함으로 파손된 1, 2호기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방사청은 4호기와 연구용으로 쓰던 기체를 통해 차기 군단급무인기가 육군이 요구한 성능에 부합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죠. 저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국내 굴지의 언론매체인 MBC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비판적 기사를 냈다는 점은 사뭇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MBC는 과거 수리온에 대해서도 “물이 기름 위에 둥둥 뜬다”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기사를 내보낸 적도 있었죠.
거기 더해 3호기가 착륙 중 파손되었던 2021년 8월에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거의 1년이 지나 개발 완료가 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갑자기 차기 군단급무인기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낸 의도 또한 궁금합니다.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KAI가 차기 군단급무인기의 개발완료를 선언하고 양산까지 하고 있는 과정에서 관리 소홀이나 방산비리로 뒤늦게 문제가 발견된 사안이라면 호된 질타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시제기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결함을 프로젝트 전체의 실패로 결론 짓는 것은 ‘시제기’의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제대로 된 무인기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보여주는 해외 기사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군사 전문지 Defence Security Asia가 2022년 5월 25일에 게재한 기사인데요. 기사 제목이 “Chinese-Made Drones Labeled "Cheap But Ineffective", Right? (가격은 저렴하지만 성능마저도 저렴하다는 이름표가 붙은 중국제 드론들, 그렇지 않나요?)” 입니다.
미국의 MQ-1 프레데터 같은 고성능 무인 전투드론을 구매하고 싶어했지만 정치적 이유 혹은 경제적 이유로 구매할 수 없었던 중동 국가들이 저렴한 맛에 중국의 CH-4B 무인 전투드론을 구매했지만 가격만큼이나 저렴한 성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CH-4B 무인 전투드론은 MQ-1 프레데터보다는 조금 더 무겁고 KAI의 차기 군단급무인기보다는 약간 가벼운 중량의 기체입니다. 조만간 차기 군단급무인기의 무장 버전이 등장한다면 해외 수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중국의 CH-4B라는 뜻이죠.
해외 기사를 통해 제대로 된 무인 전투드론의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번역해 봅니다. 해외 기사 번역을 마치면 별도의 의견 제시 없이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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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던 제 3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서방 국가들이 생산하고 있는 경쟁 제품들에 비해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군용 드론은 한때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실전에서 보여준 비효율적인 모습에서부터 유지보수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후속지원을 받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군용 드론을 포함한 무기 수출 분야에서 미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의 국가로 부상하고자 했던 중국의 노력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만든 CH-4 드론을 구매하기 위해 수 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던 나라들이 하나 둘씩 잇따라 운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지만 투명성과 신뢰성마저도 저렴한 무기'라는 이미지 문제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렇게 여러 나라들이 잇따라 중국제 전투용 드론의 운용을 전격 중단시키면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노리고 있던 '세계 최고 수준(top tier)의 무기 수출국'으로써의 이미지는 오히려 크게 실추되었고, 중국 방산 제품들이 실전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과거 중국제 드론을 구매했지만 전격적으로 운용을 중지시킨 고객들 중에는 중국제 무인전투드론 CH-4B를 해외 다른 국가에게 재판매 하겠다고 나선 요르단도 있다. 이 중동 국가는 불과 2년 전에 CH-4B를 구매했었다.
요르단 군 관계자는 국제 방산뉴스 전문 포털 셰퍼드 미디어(Shephard Media)와의 인터뷰에서 요르단이 해당 중국산 무인 전투 드론을 해외로 재판매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르단은 중국산 무인전투기 CH-4B가 실전에서 보여준 성능에 전혀 만족하지 못해 운용을 하지 않고 있는데 창고에서 묵히느니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다시 판매하는 것이 낫다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르단 정부의 행보로 말미암아 중국 항공우주 기업들이 개발한 무인 전투 드론의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CH-4B 전투 드론은 중국항천과기집단유한공사(CASC)의 후원을 받는 기관인 중국항천공기동력기술연구원(CAAA)에 의해 개발되었다. CH-4B 무인 드론은 "Blue Arrow 7" 미사일과 TG100 관성/위성항법 유도폭탄 그리고 AR-1/HJ-10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요르단 군은 미국에서 만든 프레데터(Predator) 무인 드론과 매우 유사한 디자인을 지닌 중국 CH-4 전투용 무인 드론을 최대 6대까지 구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항천과기집단유한공사(CASC)는 미국제 프레데터(Predator) 무인 드론의 설계를 그대로 흉내 내어 CH-4 무인드론을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의 합의 결과 엉클 샘(Uncle Sam: 미국을 뜻함)이 만든 무인 드론을 인수하지 못하게 된 중동 여러 나라들이 이 중국산 무인 전투 드론 CH-4 시리즈의 고객들이 되었다.
요르단이 CH-4B 전투 드론을 2년 만에 내놓기 직전에, 또 다른 중동 국가인 이라크도 중국이 만든 CH-4 전투 드론을 유지 운용하는 데 있어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국제 방산관련 매체들은 이라크도 중국으로부터 10대의 CH-4 전투용 드론을 구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이라크는 CH-4 정비와 관련하여 발생된 치명적인 문제들 때문에 구매한 10대의 드론들 중 1대만 운용할 수 있었다.
알제리 역시 2012년에 중국에서 전투용 무인기 여러 대를 구매했지만 그들 중 일부가 비행 관제(control) 문제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CH-4 전투용 드론과 관련하여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지난해 알제리 동부 비르 라카(Bir Raqqa) 공군기지에서 CH-4 드론 한 대가 추락한 사건이다.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가 구매했던 중국제 무인기들 역시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추락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리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CH-4 무인 드론들도 역시 리비아 임시정부(GNA) 정부군에 의해 손쉽게 격추당했다. 중국은 나이지리아, 요르단, 잠비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투르크메니스탄, 아랍에미리트, 파키스탄, 미얀마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 무인 드론을 판매했다.
최근 예멘 사나(Sanaa)에서는 후티(Houthi) 반군에 의해 격추된 사우디아라비아 군 소속 중국 CH-4 무인 전투 드론(UAV)이 민가를 덮쳐 3명의 시민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나라의 언론 매체가 예멘 보건 당국의 발표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격추된 중국 무인기의 잔해가 예멘 수도에 위치한 상업 지역으로 추락하면서 민간인 3명이 사망했고 또 다른 3명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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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군사 전문지 Defence Security Asia가 2022년 5월 25일에 게재한 중국이 만든 무인 전투드론 CH-4B에 대한 기사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미리 예고한대로 영상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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