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볼 이야기는 미국의 인터넷 매체 Imgur에 브라이언 슐(Brian Shul)이 게재한 기사입니다. 브라이언 슐은 1990년 소령으로 미 공군을 은퇴한 인물인데요. 구글링으로 검색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인 경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브라이언은 심한 화상을 입고 죽음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T-28 트로얀(Trojan) 경공격기로 근접항공지원(CSA) 작전에 212회나 참여했던 베테랑 파일럿이었지만 종전이 가까워지던 1973년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서 격추 당하고 말았습니다.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로 정글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브라이언 슐(Brian Shul)을 본 의사들은 모두 가망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무려 15번의 수술을 견뎌내고 다시 공군 파일럿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20년에 걸친 그의 공군 파일럿 경력은 SR-71 블랙 버드로 마무리 짓게 되는데요. 화상으로 짓이겨진 몸으로 정글에 누워있던 그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로 칭송 받는 SR-71 블랙 버드의 파일럿으로 선발되면서 숱한 화제를 뿌리게 됩니다.
브라이언 슐이 SR-71 블랙 버드를 조종하던 당시 후방 좌석에 앉아 있었던 동료가 바로 월터 왓슨(Walter Watson)입니다. SR-71 블랙 버드에 탑승한 최초의 흑인 파일럿이기도 한 월터 왓슨과 브라이언 슐은 많은 후일담을 남겼는데요.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그 후일담들 중 하나입니다.
아직 월터 왓슨과 마음을 터놓지 못했을 때는 월트(Walt)라고 부르다가 요즘 말로 “찐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한 동료의식을 느낀 후부터는 월터(Walter)라고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과 민간 항공기들을 대상으로 마하 0.9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해군 항공대의 FA-18 호넷에게 한방 먹이고 통쾌해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에서 美 공군과 해군 사이에 얽혀 있는 전통적인 애증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이야기입니다.
자, 그럼 함께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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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71 블랙 버드를 타고 있는 동안 우리에게 허용된 행동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이 공역을 가장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료 파일럿들에게 상기시키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었다. 이런 사실 때문인지 사람들은 종종 우리에게 SR-71 블랙 버드를 조종하는 것이 재미있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SR-71 블랙 버드의 조종'을 생각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첫 단어는 결코 '재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극도의 긴장'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행위이며 뇌간 깊은 곳까지 뒤흔드는 격렬한 순간이라고 묘사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미친 듯이 하늘을 질주하던 그 시절 어느 날에,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월트(Walt)와 내가 마지막 훈련 비행을 위해 출격했을 때의 일이다. 훈련 과정을 마치고 임무수행 준비완료(Mission Ready)자격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100시간 이상의 SR-71 블랙 버드 비행기록이 필요했다. 콜로라도 상공 어딘가에서 마침내 비행 100시간을 넘긴 우리는 귀환하기 위해 아리조나에서 방향을 틀었고 SR-71은 그야말로 완벽한 작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 좌석에 앉은 내 눈 앞에는 복잡하게 배선된 계기판들이 보였고 갑자기 우리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SR-71을 타고 실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치열했던 지난 10개월 동안의 훈련을 통해 SR-71 블랙 버드를 멋지게 비행시킬 수 있는 파일럿이 되었다는 엄청난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8만 피트 아래에 펼쳐진 아리조나의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날아가면서 이미 주 경계 지역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사막과 이어진 바다. 밤낮없이 시뮬레이터와 씨름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수많은 시간들 덕분에 마침내 SR-71 블랙 버드 조종석에 앉아 이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뒷좌석에 앉은 월트(Walt)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 월트(Walt)는 서로 다른 네 개의 무선을 감청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본부에서 전달되는 우선 순위 무선 메시지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선 감청 임무는 월트(Walt)가 실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를 대비한 좋은 연습이 되어주었다.
파일럿이 된 이후 한번도 무선 통신을 남에게 맡겨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있어 무선 통신을 포기하고 월트(Walt)에게 모두 맡겨야만 한다는 사실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SR-71 블랙 버드에서는 임무 분담이 필요했고 결국 나는 그것에 적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선 통신의 즐거움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했던 나는) 적어도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무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월트(Walt)에게 계속 졸라댔다.
월트(Walt)는 다재 다능한 친구였지만 무선 통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재능에서만큼은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아주 사소한 무선 통신상 실수라도 목이 날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었던 전투기 편대에서 근무해왔던 나는 무선 통신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수년간 날카롭게 연마해왔었기 때문이었다. 월트(Walt)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적어도 지상에 있을 때만큼은 무선 통신을 할 수 있는 사치를 허락해 주었다.
월트(Walt)가 어떤 무선 통신과 씨름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별 생각 없이 무선 통신 스위치를 켰고 월트(Walt)가 듣고 있는 주파수를 찾아 같이 들어 보았다. 무선으로 잡히는 여러 이야기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훨씬 아래 쪽에 위치해 있는 로스앤젤레스 공항 관제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이들은 담당 구역의 항공 교통을 통제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로스엔젤레스 관제탑이 우리를 포착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통제를 받지 않는 높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고도를 낮출 필요가 없는 이상 일반적으로 그들과 대화할 일은 없었다.
무선을 통해 우리는 혼자 세스나(Cessna) 경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던 한 민간인 파일럿이 관제탑에게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현재 대지속도(ground speed)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관제탑은 세스나 파일럿에게 응답했다. "노벰버(November) 찰리(Charlie) 175, 귀하의 요청을 접수했다. 현재 귀하는 90노트(시속 167㎞)의 대지속도로 비행하고 있다."
항공 관제사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점은 세스나를 탄 신참 파일럿과 이야기를 하고 있든 아니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조종하는 파일럿과 이야기를 하고 있든 간에 그들은 항상 침착하고 사려 깊으며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어조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휴스턴 관제탑 목소리"라고 불렀다. 수년 동안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휴스턴 관제사들의 차분하면서도 뚜렷한 목소리는 내게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나는 다른 관제사들 역시 휴스턴 관제탑 목소리처럼 들리고 싶어한다고 느꼈으며 기본적으로 그렇게 들렸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우리가 미국 어느 지역으로 날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휴스턴 관제탑 목소리는 조종사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많은 위안을 안겨주는 목소리였다.
반대로 파일럿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무선 통신을 할 때 척 예거(Chuck Yeager)처럼 들리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존 웨인(John Wayne)처럼 들리기를 원했다. 파일럿들은 아마도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무선 통신에서 촌스럽게 들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라고 말이다.
세스나를 타고 있던 신참 파일럿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비치크래프트의 트윈 비치(Twin Beech) 한 대가 불쑥 무전에 끼어들었다. 트윈 비치 파일럿은 다소 뽐내는 듯한 어조로 자신의 대지속도가 얼마인지 알려달라고 관제탑에 요구했다. "현재 귀하는 대지속도 125노트(시속 230㎞)의 속도로 이동 중이다." 맙소사, 나는 생각했다. 저 비치크래프트(Beechcraft) 파일럿은 자기가 타고 있는 트윈 비치가 세스나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비행기라고 잘난체하는 게 틀림없어!
그런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르무어(Lemoore)에 위치한 해군 항공기지(Naval Air Station) 소속 해군 FA-18 호넷(말벌) 파일럿이 무선 통신 주파수에 등장했다. 만약 당신이 무선 통신을 들었다면 그가 해군 파일럿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멋들어진 멘트를 날리는 그의 목소리가 무선을 통해 들려왔기 때문이다. "관제탑, 여기는 더스티(Dusty)52다. 대지속도 점검을 요청한다" 로스엔젤레스 관제탑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 봐라? 더스티 52(FA-18)의 백만 달러짜리 조종석에는 대지속도 표시기가 이미 부착되어 있을 텐데 뭣 때문에 이 해군 파일럿은 굳이 관제탑에 대지속도 점검을 요청했을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여기 있는 해군 소속 더스티 52는 휘트니 산에서부터 모하비 사막에 이르기까지 비행하고 있는 느린 속도의 민간 항공기(bug smasher) 모두에게 진짜 스피드라는 게 무엇인지 확인시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도 단순하게 오늘 이 구역에서 가장 빠른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며 본인이 조종하고 있는 신형 전투기 FA-18 안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지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침착한 어조의 대답이 감정보다는 운율을 앞세운 채 관제탑에서 흘러나왔다. "더스티 52, 여기는 관제탑, 귀하는 현재 대지속도 620노트(마하 0.94)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나선다면 과연 적절한 것일까? 내 손이 본능적으로 무선 통신 마이크 버튼에 닿았을 때 나는 월트(Walt)가 무선 통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만 했다.
그렇더라도 관제탑에 연락을 해야만 한다! 앞으로 단 몇 초 안에 우리는 해당 공역을 벗어나게 되고 관제탑에 연락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릴 상황이었다. 해군의 시건방진 말벌(호넷)은 반드시 손봐줘야 하고 그것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월트(Walt)와 내가 함께 견뎌왔던 여러 훈련들을 떠올렸고 우리가 하나의 팀으로써 발전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만약 지금 내가 월트(Walt)를 제쳐 놓고 무선 통신에 끼어들게 된다면 지금까지 노력하며 쌓아 올려 왔던 팀으로써의 완전성이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야말로 갈팡질팡 어쩔 줄 몰랐다. 아리조나 사막 위 상공 13 마일 하늘 그 어딘가에서 우주 비행사용 헬멧을 쓴 채 비명을 지르는 한 명의 파일럿이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후방 좌석의 무선 통신용 마이크가 '딸깍' 켜지는 소리가 들렸고 월터(Walter)와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 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왔다. 월터(Walter)는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톤으로 관제탑에게 무전을 넣었다. "로스앤젤레스 관제탑, 여기는 아스펜(Aspen) 20이다. 현재 우리의 대지속도 점검을 요청해도 되겠는가?" 평소 우리와 한번도 무선 통신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제탑은 망설임 하나 없이 마치 늘 그래 왔었던 것처럼 답변을 보내왔다. "아스펜 20, 현재 귀하의 대지속도를 알려주겠다. 귀하는 현재 1,842 노트(마하 2.8)의 속도로 비행하고 있다."
나는 관제탑이 '1,842' 노트라고 마지막 숫자 하나까지도 짚어서 답변해 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우리의 대지속도 정보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꼬투리 하나까지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로스엔젤레스 관제탑의 태도에서 그들 역시 SR-71 블랙 버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답변을 하고 있는 관제사의 입가에도 아마 미소가 번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월터(Walter)와 내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정말 좋은 친구로 지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던 정확한 시점은 그가 다시 한번 무선 마이크 버튼을 눌러 가장 전투기 조종사다운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였다. "아, 관제탑, 도움에 정말 감사한다. 하지만 우리 계기판에는 정확하게 1,900 노트 (마하 2.9)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잠시 동안 월터(Walter)는 ‘스피드(speed)의 신’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LA 관제탑이 응답해 왔을 때 언제나 한결 같았던 '휴스턴 관제탑 목소리'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알겠다, 아스펜. 귀하의 장비는 아마도 우리가 보유한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귀하들은 정말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수십 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생겨난 일들이었지만, 마하 3에 가까운 속도로 나르는 SR-71 블랙 버드를 타고서 미국 남서부를 질주했던 짧고 여운 가득한 비행 동안, 우쭐대던 해군 전투기는 화염에 휩싸여 한 줌 재로 날아가 버렸고 무선 통신 채널에 대기하고 있던 모든 인간계 비행기들은 스피드의 신(God of speed)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월터와 내가 진정한 의미의 팀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훈련으로 점철된 고된 생활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운 흥분을 경험한 날이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날아가는 제법 긴 시간 동안 해당 무선 채널에서 그 어떤 다른 통신도 들을 수가 없었다.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그곳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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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국의 인터넷 매체 Imgur에 브라이언 슐(Brian Shul)이 게재한 글을 번역해서 영상과 함께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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