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영국의 유력 언론 더 가디언(The Guardian)에 투고한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국가란 결국 이야기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암울한 날들 속에서뿐만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 아니 세대에서 세대로 걸쳐 우크라이나인들이 되새기게 될 이야기들이 날이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수도에서 피난하기를 거부하며 미국에게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말한 대통령, 러시아 전함에게 꺼지라며 욕설을 퍼부은 스네이크 섬의 군인들, 길바닥에 주저앉아 온 몸으로 러시아 탱크의 진격을 막아낸 시민들. 굳건한 나라란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이야기'들이 탱크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망과 잘못된 정세 분석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고 러시아보다는 나토(NATO)의 동진이 주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 능력 밖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범위의 문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꽤 오랫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양국 미래 세대들에게 전달해 줄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 서로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될 감정은 바로 ‘증오’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역사와 동족 상잔의 비극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느 쪽에 더 공감이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러시아의 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이 원했던 전쟁의 목표가 하나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였다면 실패한 전쟁이라는 사실은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유명 군사 블로거이자 유튜버인 알렉세이 스미르노프(Alexey Smirnov)라는 인물입니다. 푸틴을 찬양하는 친정부 인사로 유명한 이 군사 블로거의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면 구독자수가 무려 145만 명에 달하고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수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군사 장비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리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고 알렉세이 스미르노프가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 군사 전문지 Defence Blog가 지난 4월 10일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14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에 직접 참전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친러 군사 조직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권에서 봤을 때, 결코 곱게 보일 리 없는 이런 인물의 유튜브 채널이 어느 날 갑자기 서구권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조회수가 급등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23년 4월 10일 유럽의 군사전문지 Defence Blog가 게재한 기사 내용을 살펴보며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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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 소동(Крупнокалиберный Переполох)'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러시아 밀리터리 블로거 알렉세이 스미르노프의 유튜브 채널이 갑자기 수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끌었다. 스웨덴 사브(Saab)사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이름난 AT4 대전차 무반동포(총) 발사에 실패한 영상을 업로드 한 직후였다.
푸틴의 정책을 옹호하며 친러시아 정부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 유튜버는 러시아에서 제작된 다양한 RPG 로켓런처의 성능과 '전설적'인 스웨덴의 명품 무반동포(총) AT4의 성능을 비교해 보는 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영상 속에서 스미르노프는 AT4를 발사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뭔가에 강하게 얼굴을 얻어맞고 그대로 나동그라진다. 어깨에 올린 채 발사를 시도했던 스웨덴산 대전차 무반동포(총)가 사정없이 튀어올라 스미르노프의 얼굴을 직격 했던 것이다. 한동안 어리둥절한 얼굴로 누워있던 그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https://twitter.com/i/status/1645051698220507139
트위터에서 즐기는 Illia Ponomarenko 🇺🇦
“Russians.”
twitter.com
마침내 겨우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 러시아의 "유명 군사전문가"는 NATO 무기야말로 "거지 발싸개 같은 형편없는 쓰레기(a piece of sh*t)"라며 거친 욕설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온 뒤 대부분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AT4 무반동포(총)가 아니라 러시안 군사 블로거를 성토하는 내용의 댓글들을 달았다. 그 댓글들은 대부분 (위험한) 무기들은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젠장 맞은 매뉴얼(f*cking manual)"을 잘 읽고 사용법을 숙지해야만 하는데 이 블로거는 그 절차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AT4 대전차 무반동포(총) 전반부에 앞으로 접히는 손잡이가 왜 달려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방 손잡이(front grip)는 AT4 런처에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어 조준 및 발사 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전차 무반동포(총) AT4를 발사하기 전에 사용자는 반드시 어깨 멈춤쇠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전방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만 한다.
해당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 알렉세이 스미르노프는 2014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대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직접 참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친러 군사 조직을 지원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해롭기 짝이 없는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스웨덴 사브(Saab)가 개발하고 생산하는 AT4 대전차 무반동포(총)의 경우 전문적인 교육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고 사용 방법도 매우 간단해서 광범위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이다. 사브(Saab)는 AT4 무반동포(총) 판매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덕분에 AT4 무반동포(총)는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대전차 경량 무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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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23년 4월 10일 유럽의 군사전문지 Defence Blog가 게재한 기사 “Russian milblogger becomes viral meme on social media (러시아 밀리터리 블로거가 소셜 미디어상에서 유명한 밈meme이 되다)”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트위터에 올라와 있는 네티즌들의 댓글을 읽어보면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러시아 군인보고 멍청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밥은 먹고 다니냐?” “사용 설명서를 글로 쓰니까 어려운 거다. 5살 유아용 그림 설명으로 바꿔줘라”
구독자 145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유튜버인 동시에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반인은 구경하기도 힘든 고가의 무기 체계들을 다루는 소위 ‘전문가’라면 그에 맞는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군에서 ‘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위험성 높은 무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데 있습니다.
평소에 다루던 러시아제 무기가 아닌 나토(NATO)의 무기였다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사용 설명서를 읽고 숙지하여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전문가’다운 대응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AT4 같은 무반동포(총)는 자체 추진체로 날아가는 RPG같은 로켓포와는 달리 장약의 폭발력을 이용하여 날아가는 ‘포탄’으로 강력한 후폭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자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에게도 잠재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무기체계입니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만에 하나 나토(NATO)의 무기 체계를 폄하하기 위해 알렉세이 스미르노프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연기’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발사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신체에 닥칠 위험을 알면서도 저렇게 연기를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현재 알렉세이 스미르노프 채널에서 해당 영상은 삭제되어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대신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밈(meme)이 되어 인터넷 상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포스팅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FcRY0tL7b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