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6일 폴란드 라돔(Radom)에서 개최된 에어 쇼에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제작한 FA-50GF가 러시아 MiG-29와 함께 등장하여 폴란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폴란드 군사전문지들은 일제히 FA-50GF의 등장을 다루는 기사를 실었는데요. 이 기사를 번역해볼까 하다가 그보다 먼저 2023년 7월 말 『한미동맹 70주년, 동맹강화를 위한 방산협력 확대 전략 세미나』라는 이름의 비공개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공유하는 영상을 먼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美)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톰 카라코(Tom Karako) 국제안보국장이 “K-방산, 미국 시장 진출 성공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기조 연설을 하고 미(美) 해군 및 공군이 추진하고 있는 ‘훈련기 및 전술훈련기’ 도입 사업에서 T-50 (FA-50)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 록히드 마틴, 산업연구원 그리고 국방기술품질원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나와 주제 발표를 한 세미나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해당 세미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미(美) 해군/공군 훈련기 사업에 KAI &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이 어떤 전략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세미나일 것이라는 점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비공개 세미나이다 보니 자료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어렵게 해당 세미나 자료를 구할 수는 있었는데요. 비록 외부로 공개하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들은 삭제되어 있는 버전이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부분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미(美) 해군/공군 훈련기 사업 준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미나 자료들 중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던 항목은 보잉&사브의 T-7A와 록히드마틴&KAI의 FA(T)-50의 비교 우위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현재 고등훈련기 시장에서 FA(T)-50과 경쟁이 가능한 기종은 보잉&사브의 T-7A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향후 미(美) 해군/공군 훈련기 사업은 이 두 기종 간의 2파전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솔직히 T-7A 개발과정에서 윙락(wing rock) 현상과 사출좌석 불량 문제 등 보잉이 보여주고 있는 난맥상 때문에 FA(T)-50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세미나 자료를 살펴보니 상당히 다른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해당 세미나 자료는 KAI &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이 ‘추가적인 준비’ 없이 현재 상태 그대로 수주전에 뛰어든다면 보잉&사브 T-7A에 또 다시 무릎을 꿇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분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미(韓美) 방산협력 세미나 자료에서 가장 위협적이라고 분석한 요소는 바로 T-7A의 가격 경쟁력이었는데요.
2018년 미 공군이 주관했던 고등훈련기(ATP) 사업에서 군수분야 매출이 급감하고 있던 보잉은 당시 생소했던 디지털 엔지니어링과 3D 프린팅 같은 최첨단 기술의 도입을 선언하며 미 공군이 예상하고 있었던 입찰 금액 197억 달러, 한화 26조 원의 1/2 수준에 불과한 금액으로 베팅을 했습니다. 결국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던 KAI &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은 패배하고 말았죠.
방산업계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내용에 따르면 무기체계를 선정할 때 미 공군은 ‘가격’을, 미 해군은 ‘성능’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T-7A를 ‘고정 가격’으로 입찰했습니다. T-7A의 경우 윙락 결함을 수정했더니 사출좌석 문제가 불거지는 등 예정보다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있고 그 결과 개발 비용의 상승과 직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잉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L. 칼훈은 2022년 1분기 동안에만 T-7A 때문에 3억 6,700만 달러, 한화 약 4,600억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탄하기도 했죠. T-7A처럼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기체를 개발하는 계약에 지나치게 큰 모험을 걸었다며 두 번 다시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기체 개발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T-7A는 가격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잉이 얼마를 손해 보든 미 공군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물론 T-7A 개발이 늦어지는 만큼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T-38 탈론으로 계속 훈련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높은 사고 확률과 파일럿 양성과정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는 문제점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 공군이 주최하는 고등전술훈련기(ATT) 수주전에서 T-7A의 가격 경쟁력이 또 다시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상대적으로 미 해군은 ‘가격’이 아니라 ‘성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내심 짚이는 곳이 있었습니다. 예전 방산업계 관계자로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미 공군 고등전술훈련기(ATT) 쪽이 아니라 미 해군 훈련기(UJTS) 쪽이라는 말을 듣고선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미 공군이 ‘가격’을 중요시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앞뒤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KAI &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이 FA(T)-50의 가격 경쟁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명제의 당위성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미(韓美) 방산협력 세미나 자료는 FA(T)-50의 가격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도 제안하고 있었는데요. T-7A가 지니고 있는 두 번째 경쟁력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먼저 짚어본 뒤 다시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격 경쟁력에 이은 T-7A의 두 번째 강점은 바로 ‘신형 항전장비’에 있습니다.
KAI &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이 공동 개발한, 사실 록히드 마틴이 설계하고 KAI가 제작했다고 설명해도 무리가 없는 T-50이 초도 비행에 성공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1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2002년 8월이었습니다. 즉, 초기 T-50에 탑재된 항전장비들은 20년 넘게 쓰이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2011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FA-50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설계된 T-50에 탑재된 항전장비보다는 개량된 버전의 항전장비가 장착되어 있음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도 벌써 12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 개발되고 있는 보잉 T-7A의 항전장비들보다 구형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따라서 『韓美 방산협력 비공개 세미나』는 T-7A가 지니고 있는 ①가격 경쟁력과 ②신형 항전장비 탑재라는 강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따라 FA(T)-50의 미국시장 진출 승패 여부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산업연구원 장원준 박사의 주제발표에 따르면 미 해군 훈련기(UJTS) 사업이 시작되는 시기는 2년 뒤인 2025년 하반기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잉&사브의 T-7A의 경우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윙락(Wing rock) 현상과 사출좌석 결함 등의 여파로 당초 예상보다 2년 이상 지연된 2025년 이후에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빨라도 2027년은 되어야 미 공군에 실전 배치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 훈련기(UJTS)사업에 도전하기에는 T-7A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장원준 박사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FA(T)-50의 공허중량이 6.8톤인데 반해 T-7A의 공허중량은 3.3톤에 불과합니다. 무장과 각종 항전장비를 탑재하고 비행할 수 있는 최대이륙중량도 FA(T)-50의 경우 12.2톤이지만 T-7A의 경우에는 5.5톤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KKMD 415화 『참신하지만 불안한 T-7A를 바라보는 美 언론의 상반된 시선: T-7은 과연 제2의 F-5가 될 수 있을까? (공허중량의 비밀)』 편에서 상세하게 언급했지만 T-7A의 공허중량 및 최대이륙중량은 ‘훈련기 사양’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최대이륙중량이 12.2톤인 FA(T)-50의 무장 탑재력이 4.5톤입니다. 그렇다면 최대이륙중량이 5.5톤에 불과한 T-7A의 무장 탑재력은 2톤을 넘기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미 해군 훈련기(UJTS)로 사용하려고 해도, 미 공군이 원하는 전투기에 준하는 성능을 가진 고등전술훈련기(ATT)로 사용하려고 해도 기골 보강은 필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골 보강은 기체 전체를 건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기체의 무게 중심이 바뀔 수도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는 작업이죠.
개인적으로 『韓美 방산협력 비공개 세미나』에서 분석하고 있는 내용에 모두 다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FA(T)-50의 ①가격 경쟁력과 ②신형 항전장비 확보가 미 해군/공군 훈련기 사업 승패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전격적으로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산업연구원의 장원준 박사는 국내에 실전 배치되어 있는 T-50 계열 전투기들의 성능개량 사업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 가격 경쟁력을 제고할 것을 추천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군에 실전 배치되어 있는 FA/T-50 계열 전투기들의 숫자는 150여대 입니다. 이들 중 기체 수명이 15년 이상 된 것들은 중간수명연장(MLU)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며 초기 부품들 중에는 이미 단종된 것들도 있어 새로운 부품으로 교환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때 150여대에 달하는 FA/T-50 계열 전투기들의 항전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시킨다면 가격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동시에 T-7A보다 상대적으로 구형이라는 지적의 대상이 되었던 항전장비들도 일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장원준 박사는 K9 자주포가 폴란드 수출에 성공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조 4천억이라는 금액을 투자하여 K9A1을 A2버전으로 성능개량 할 수 있도록 승인했던 방위사업추진위원회 2023년 6월 결정을 좋은 예로 들고 있습니다.
FA-50도 폴란드로 50대 가까이 수출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개량되고 있습니다. 최근 KAI는 대한민국 공군에게 기존 FA(T)-50 계열 전투기들에 대한 개량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는데요. 장원준 박사는 이러한 개량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보잉&사브 T-7A에 꿇리지 않는 수준의 신형 항전장비와 훨씬 더 개선된 가격 경쟁력을 갖춘 FA(T)-50이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공군은 대당 2,000억에 가까운 프로그램 비용으로 F-35A를 도입하고 있는데다 KF-21 보라매 사업까지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에 여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FA(T)-50 계열 전투기들의 수명연장(MLU) 및 개량 사업은 대한민국 공군의 우선 순위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공군에게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K9 자주포 A2버전 개량사업처럼 전담 TF팀을 따로 만들어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지원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韓美 방산협력 비공개 세미나』 발표 내용에 대해 “항공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FA(T)-50 계열 전투기에 그만한 돈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KAI 배만 불리는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맞습니다. FA(T)-50 계열 전투기들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에는 감히 비비지도 못하고 F-16, 라팔, 그리펜 E/F 같은 4.5세대 제공 전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능을 가진 로우급 경전투기입니다.
하지만 권투에서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스트레이트나 혹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잽’을 익혀야만 합니다. 가장 약한 공격력을 지닌 잽이지만 가장 자주 써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고, 자세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공격 수단이면서도 가끔은 방어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가장 약한 공격력을 지닌 ‘잽’과 가장 강한 공격력을 지닌 ‘훅’은 서로를 배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강력한 훅(F-35)을 가지고 있다면 유효한 잽(FA-50)은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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