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ADEX 전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최대한 일찍 들어와서 최대한 늦게 나갈 수 있도록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첫날은 전문 관람객(Trader Visitor)로 등록하느라 한 시간 반 이상을 전시장 밖에서 허비해야 했지만 나머지 이틀 동안은 기자출입증(Press)을 발급 받은 덕분에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기자출입증을 발급 받은 만큼 더 열심히 취재를 했습니다. 사흘 동안 점심은 사치였을 정도로요.
ADEX를 취재한 3일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곳은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였습니다. 밀리터리 외신번역 채널 KKMD가 태동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FA-50을 생산하는 곳이자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KF-21 보라매를 개발하는 곳인 만큼 집중적으로 취재를 했는데요. KAI, 한화, 현대로템, LIG 넥스원 부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귀신처럼 나타나 질문 공세를 퍼붓는 KKMD를 귀찮다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KF-21 보라매는 진화적 개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기체입니다. 완전한 공대공 능력에 제한적 공대지 능력을 지니는 블록 1, 완전한 공대지, 공대함 공격 능력을 모두 갖추는 블록 2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군 그리고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이에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KF-21 보라매의 최종 진화 단계인 블록 3에 대해 어떤 컨셉으로 다가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ADEX 2023 취재 결과로는 한국항공우주산업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업계 소식통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KF-21 보라매 블록 3는 애초 계획대로 내부 무장창을 갖춘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F-15K정도의 크기와 무장 탑재력을 지닌 대형 공중우세기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니, 스텔스로 가야지 왜 난데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F-15K야?”라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안의 장단점을 각각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KF-21 보라매 블록 3가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될 때 장단점
가장 큰 단점은 현재 설계상 내부 무장창의 크기가 충분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관계자의 설명으로는 공대공, 공대지 무장 각각 2개 정도가 한계입니다. 더구나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천룡(天龍)이나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핵심 무장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내부 무장창 탑재가 어렵습니다.
ADEX 관람을 마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지인이 제 이야기를 듣더니 그렇다면 KF-21 보라매 블록 3는 스텔스로 진화시키고 천룡 장공지나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등으로 중무장한 KF-21 보라매 블록 2로 보완하면 될 일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일리 있는 의견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KF-21 보라매 블록 3가 과연 스텔스 성능 측면에서 F-35 라이트닝 II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관계자는 KF-21 보라매 블록 3가 스텔스기로 개발된다면 상당한 수준의 스텔스 능력을 발휘하겠지만 F-35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공군은 F-35A를 80대 가까이 도입할 계획이기 때문에 스텔스 전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히려 F-35A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뛰어난 기동력과 우수한 무장 탑재력을 지닌 기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됩니다. ADEX 2023 현장에서 실무자, 엔지니어 그리고 실제 공군에서 활약했던 파일럿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필요한 스텔스 전투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공군 전력의 20% 정도면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대한민국 공군의 전술기 숫자가 420대 정도로 제한되어 있고 420대의 20%는 84대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대한민국 공군이 요구하는 F-35A 80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KF-21 보라매 블록 3를 많은 비용을 들여 스텔스로 개발하자고 하면 공군 입장에서는 ‘굳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국회 및 방산업계가 스텔스화된 KF-21 보라매 블록 3의 등장을 F-35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고요.
KF-21 보라매 블록 3를 스텔스로 개발했을 때의 장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뜯어보고 개량할 수 있는 국산 스텔스 전투기를 가질 수 있다는데 있으며 천문학적인 수준의 운용유지비와 업그레이드를 위해 바가지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KF-21 보라매 블록 3가 F-15K같은 대형 공중우세기로 개발될 때 장단점
대한민국 공군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대안을 고민해야 할 후속 기종은 F-15K입니다. 하이-하이(High-High)급 전술기 F-35A의 도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 KF-16의 자리는 KF-21 보라매에게 맡길 수 있는데 F-15K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입니다. 객관적으로 현재 KF-21 보라매는 크기나 무장 탑재력 측면에서 F-15K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KF-21 보라매 블록 3를 F-15K급 크기를 지닌 대형 공중우세기로 개발하자는 의견도 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 분석으로는 이쪽 의견이 KF-16의 후임을 FA-50 단좌형보다는 KF-21 보라매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공군의 생각과 잘 융합됩니다.
만약 KF-21 보라매 블록 3가 대형 공중우세기로 개발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긴 체공 시간과 강력한 무장 탑재력을 지닌 전투기로 거듭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전투기의 덩치를 키우는” 프로젝트가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계자는 복좌형 FA-50을 단좌형으로 재설계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산출해 봤더니 4,000억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깜짝 놀랐다는 표현을 했는데요.
기체를 재설계하면 기껏 밸런스가 잡혀있던 나머지 부분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발생시키게 되고 그에 따른 수많은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FA-50 단좌형 조종석도 재설계가 아닌 후방 좌석을 개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FA-50 조종석 개량에 이정도 비용이 필요한데 KF-21 보라매의 크기를 키우는 정도의 작업이 되면 굳이 말로 설명 드리지 않아도 얼마나 일이 커질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제가 처음에 멋모르고 “KF-21 보라매 블록 3의 크기를 F-15K나 터키 칸(Kaan)급으로 키우면 내부 무장창 공간도 넓어지니 더 쉽게 스텔스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들은 대답이 바로 엄청난 비용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KAI 엔지니어들과 실무자들 중에는 처음부터 KF-21 보라매의 크기를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채택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사업 초기 KF-21 보라매가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왔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나마 지금 크기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는 반응들이 많죠.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현재 KF-21 보라매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초기 설계보다 조금씩 크기가 커졌습니다. 실무진들과 엔지니어들의 뚝배기 고집이 지금 와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과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앞다투어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 대수는 예전 F-15나 F-16과는 비교되지 못할 만큼 소수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F-35A같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는 적진을 돌파하여 방공망을 초기에 제압하는 임무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분석으로는 기동성과 무장 탑재력이 떨어지는 F-35A를 보완할 수 있는 4.5세대 전투기에 대한 틈새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다쏘 라팔(Rafale)이나 미국 F-15EX 같은 전투기들을 예상할 수 있지만 하나같이 비싸고 기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F-15K급의 폭장량을 갖춘 스텔시한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블록 3가 등장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미국과 중국이 아닌 이상 공군 전력의 20% 이상을 스텔스 전투기로 채우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4.5세대 전투기인 F-15J를 270여대, F-2를 90여대 정도 보유하고 F-35A를 100여대(F-35B 40여대 별도) 생각하고 있어 30% 정도를 스텔스 전투기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군사전문가들 중에서 KF-21 보라매 대신 F-35 위주로 공군 전력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거기 더해서 중고 F-22까지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펼치는 것을 신문 기사로 읽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합리성이 떨어지는 주장입니다. 항상 돈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논의를 한 단계 더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KF-21 보라매는 기본적으로 스텔스 전투기로 진화할 수 있는 설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완전한 스텔스로 만든 다음 덩치를 키우는 편이 쉬울까요 아니면 일단 덩치를 키운 다음 스텔스화 시키는 것이 쉬울까요? 사실 이 부분은 ADEX 현장에서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지만 제가 추론한 바로는 일단 덩치를 키운 다음 스텔스화 시키는 쪽이 훨씬 난이도가 낮을 것 같습니다.
KF-21은 원래 피탐성을 낮춘 레이더 흡수구조(RAS)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 무장창 탑재 여부와 레이더 흡수물질(RAM)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레이더 반사면적(RCS)이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먼저 덩치를 키우면서 내부 무장창을 탑재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기타 밸런스를 잡은 다음 우수한 레이더 흡수물질(RAM)을 기체 표면에 도포해준다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텔스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F-15대신 F-35를 보조하는 미사일 트럭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제가 이런 논의를 끄집어 낸 이유는 바로 6세대 전투기 개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KF-21 보라매 블록 3의 덩치를 키우고 넓어진 공간에 내부 무장창도 넣으면서 스텔스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제 질문에 관계자는 “그런 전투기가 바로 6세대 전투기의 시작점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기 때문입니다.
즉, KF-21 보라매 블록 3를 F-35같은 스텔스 전투기로 갈 것인가? 아니면 F-15K같은 대형 공중우세기로 갈 것인가? 라는 질문은 한국형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포스팅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CSbHOjFLSaA
'대한민국 공군 무기체계 > 대한민국의 날개 KF-21과 FA-5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반응] ADEX 첫 공개비행을 통해 드러난 KF-21 보라매의 우수한 성능과 안정성: 대한민국의 저력과 위상을 보여줬다! (0) | 2024.01.12 |
---|---|
그리펜(Gripen) 대신 FA-50을 고려하는 필리핀 공군? 해외에서 더 주목 받는 FA-50 블록 20(70)의 능력! (1) | 2024.01.10 |
스텔스 전투기도 문제없다? KF-21 보라매에 탑재되는 3가지 대(對) 스텔스 능력! (1) | 2024.01.02 |
FA-50 이집트 수출소식에 ‘슈퍼스타’가 탄생했다고 보도하는 중국 언론: 이거 참 당황스럽네! (1) | 2023.12.28 |
사거리 300㎞, 마하 2.5로 날아가는 초음속 공대지/공대함 미사일을 통합한 FA-50, 2025년 등장한다! (1) | 2023.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