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SBS는 8시 뉴스를 통해 실전배치 된 대구급 신형 호위함(FFG-II)들이 심각한 결함 때문에 일정 속도 이하로만 운용해야만 하는 상태라고 보도했는데요. 이는 대구급 호위함에 탑재되어 있는 추력 베어링이 추진 축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먼저 제가 알고 있는 군 소식통을 통해 실제 이런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관계는 확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자료를 모아 분석해보니 SBS 보도내용만큼 심각한(?) 결함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차 연평해전 및 천안함 사건 이후 설계된 대구급 신형 호위함은 보다 강한 화력과 북한 잠수함에 대한 대잠전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방사청 및 해군 수뇌부의 요구에 의해 급격한 설계변경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킨 것은 사실로 확인됩니다.
다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방산비리 등이 끼어들었을 여지는 없었다고 판단되며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신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시행착오로 이해됩니다. 물론 방사청이나 해군 수뇌부의 딱딱하게 경직되고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듯한 대응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2018년부터 취역하기 시작한 대구급 신형 호위함은 취역 5개월 후인 2019년 2월 21일 전기모터 추진체계에 문제가 있었음이 보도되었고(조선일보) 2020년 10월 7일에는 장착된 MT30 가스터빈 엔진에 문제가 있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MBC 뉴스데스크)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이 만든 최신형 전투함에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요? 그 원인을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먼저 대구급 신형 호위함은 우리 군 최초로 하이브리드 추진체계가 적용된 전투함입니다. 저속에서는 전기모터로 추진하고 고속에서는 가스터빈 엔진으로 추진력을 얻기 때문에 하이브리드(복합) 추진체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기계식 추진체계보다 구조는 복합하지만 연비가 7~15% 이상 향상되고 방사되는 소음도 훨씬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으며 잠수함을 상대하는 대잠전에서 매우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로 해군은 당시 대구급 신형 호위함의 설계를 맡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에게 강력한 대잠전 능력을 보유한 저소음 추진체계를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전기모터로 추진하는 하이브리드 추진체계가 고려되었죠.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은 위험을 최대한 피해가기 위해 해군에서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던 LM2500 가스터빈 엔진과 전기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MTU 디젤엔진을 신형 호위함에 그대로 사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기모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던 AIM(Advanced Induction Motor: 선형유도전동기) 방식을 선택할 예정이었고요. 만약 당초 계획대로 설계가 되었다면 오늘날 대구급 신형 호위함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점들의 상당수는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은 당초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것일까요? 먼저 방위사업법과 군수품관리법 상의 규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규정에 의하면 “신규함 건조사업”이 아닌 “계열함 개량건조” 사업의 경우 작전요구조건(ROC)가 기존 전투함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규정들은 운용, 정비, 훈련 면에서 공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구급 신형 호위함의 경우에는 이 규정이 일종의 ‘독’으로 작용되었습니다.
대구급 호위함은 이전에 만들어졌던 인천급 호위함의 계열함이고 인천급의 경하 배수량은 2,300톤이기 때문에 방위사업법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2,800톤(2500X120%)까지, 500톤 정도만 확장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의 경험을 반영하길 원했던 해군은 이후에 만들어질 대구급에는 화력강화를 위한 5인치(127mm) 대형 함포와 한국형 수직발사기(KVLS)뿐만 아니라 대잠전 능력 제고를 위한 SQR-220K 흑룡 TAS 소나 및 소음감소를 위한 전기추진체계까지 탑재하기를 원했습니다. 확장 가능한 용량은 500톤에 불과한데 이 모든 장비들을 모두 탑재하려면 배수량 3천 톤은 훌쩍 넘는 크기의 전투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해결책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의 획득규정을 개정하거나 대구급 호위함을 아예 새로운 사업으로 건조하든지 이도 저도 안되면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에게 2,800톤 규정에 들어맞는 범위 내에서 꾸겨 넣으라고 지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 규정은 법령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고 대구급 건조사업을 새로운 사업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도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가장 손쉬운 것은 대구급의 설계를 변경하는 방법이었겠죠.
일부 전문가들은 천안함 침몰사건 직후 거의 준 전시에 해당할 만큼 급박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방사청이나 해군의 고위급 인사들이 정치권에 강력하게 규정개정 요구를 했더라면 관철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은 2,800톤이라는 배수량 제한을 지키면서도 소음을 최대한 억제한 정숙 주행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AIM 방식의 전기모터를 포기하고 검증은 부족하지만 신기술이 도입된 PM(영구자석) 방식의 전기모터를 도입하기로 결정합니다.
PM(영구자석형) 전기모터는 원래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구축함 DDG-1000 줌왈트급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물건입니다. 신기술이 도입된 PM 전기모터는 같은 파워를 내면서도 기존 AIM 전기모터의 절반 정도 크기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한된 배수량을 만족시켜야 했던 당시 설계팀에게는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PM 전기모터는 가격 또한 2배로 비싸다는 단점과 극히 소수의 해군만이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미지의 물건이라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가스터빈 엔진의 크기와 무게 또한 줄여야만 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이 사용하고 있던 기존 가스터빈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의 LM2500이었는데요. 최대 출력이 25MW였습니다. 이에 비해 롤스로이스가 만든 MT30은 보잉 777에 사용되고 있는 터보팬 엔진을 전투함용으로 개조한 신형 모델입니다. 최대 출력이 40MW까지 나와서 LM2500 엔진 2대 몫을 할 수가 있었죠. 그 결과 대구급 신형 호위함의 추진체계는 MT30 가스터빈 엔진(1대)과 PM 영구자석형 전기모터(2대) 그리고 이에 전력을 공급하는 MTU 디젤엔진으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까스로 2,800톤이라는 배수량 제한은 맞출 수가 있었지만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대구급 신형 호위함의 전기모터와 가스터빈 엔진은 초반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 드렸던 조선일보의 2019년 2월 21일 전기모터 추진체계 문제와 MBC 뉴스데스크의 2020년 10월 7일 MT30 가스터빈 엔진 문제에 대한 보도가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사용 국가가 대한민국 이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한 추진체계였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도 없어 원인파악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해군이 잘 사용하고 있던 기존 추진체계인 제너럴 일렉트릭 LM2500 가스터빈 엔진의 경우 정비운용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 새로운 엔진으로 교환해야 할 정도의 고장이 아니라면 국내에서 수리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의 MT30은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었기 때문에 정비운용체계를 갖추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지난 9월 23일 SBS가 보도한 내용에 대해 살펴볼까요? 기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기하고 있는 문제 부위는 추진 축과 추력 베어링입니다. PM 영구자석 모터나 MT30 가스터빈 엔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더해 대구급의 후속사업인 울산급 Batch-III 사업에서 만들어질 차기 신형 호위함은 대구급과 유사한 함형을 지녔지만 길이가 7미터, 경하 배수량은 800톤이 늘어나 대구급보다 훨씬 큰 전투함이 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체계를 살펴보면 롤스로이스 MT30 가스터빈 엔진 1기와 영구자석 방식의 PM 전기모터 2기로 대구급과 동일합니다. PM 전기모터 및 MT30 가스터빈 엔진 문제로 혹독한 고생을 했던 해군이 차기 호위함에도 같은 제품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제대로 된 정비 및 운용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SBS 기사에서 추진 축과 추력 베어링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원인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의 설계상의 잘못일 가능성과 해당 부품을 납품한 유럽 회사의 제조상 잘못일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군 관계자도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업체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데다 누구의 잘못인지 결론이 나도 승복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되겠지만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에서 결국은 원인을 찾아낼 것이고 PM 모터와 MT30 가스터빈 엔진 문제를 해결했듯 추진 축과 추력 베어링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처음부터 법 개정을 통해 신뢰성이 입증된 제품을 사용해 대구급 호위함을 설계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고 주요 전투함의 전력이탈이라는 뼈 아픈 손실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기 수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가 자국 군대가 대규모로 활용을 하고 있느냐?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군이 사용하고 있느냐? 라는 사실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해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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