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국방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는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이를 종합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고도의 산업기반과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라고 볼 수 있는 항공우주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등장할 수 있는 ‘제트 전투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현대전에서 제공권의 중요성은 실전을 통해 여러 번 입증되었고 최강의 전투기는 곧 최강의 군사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한 나라의 국방력에 있어 전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국에서 사용할 전투기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의 숫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합니다. 떠오르는 군사대국 중국의 경우 자국 전투기 생산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염치불구’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패망을 틈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러시아를 상대로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Su-27 플랭커 200대의 면허생산 권리를 따온 중국은 이를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여 러시아의 선진 항공기술을 고스란히 훔쳐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습득한 항공기술을 바탕으로 J-11이라는 Su-27의 파생형도 만들어내고 J-10 단발엔진 전투기를 만드는데도 활용하기에 이르죠.
시작이야 어찌되었든 오늘날 중국의 항공우주기술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도 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선진기술을 훔쳐오다시피 습득한 경우가 허다하죠. 문제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공군의 외형만큼이나 내실도 함께 다져지고 있느냐? 라는 의문에 있습니다.
이 질문을 생각해 보기 위해 2021년 8월 4일 미국의 국제정세 전문지 National Interest에 실린 기사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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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태국에서 개최된 기동 훈련(war game)은 중국 공군의 공중전 전술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결함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태국에서 중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현대적으로 설계된 기체를 조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시계 외 공중전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 전술에도 더디게 반응했다.
2015년 11월 중순 태국 코랏(Korat) 공군기지에서 2주간 진행된 팰컨 스트라이크(Falcon Strike) 훈련은 중국 공군과 태국 공군이 함께 치른 사상 첫 합동훈련이었다. 중국 공군은 J-11 전투기로 합동훈련에 참가했고 태국 공군은 Korat 공군기지에서 미국의 F-16을 운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동훈련에는 수랏타니(Surat Thani) 공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그리펜 전투기를 출동시켰다. 왕립 태국 공군은 12대의 JAS-39C/D 구형 그리펜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 공군의 J-11은 러시아의 Su-27 플랭커를 복제한 물건이고 현재 500여대 정도가 생산되어 있습니다. 태국 공군이 보유한 JAS-39 그리펜의 경우 C/D형으로써 구형에 속하고 이를 개량한 기체가 Gripen E/F입니다. 개량형인 E/F는 KF-21 보라매와 동일한 F-414엔진을 단발로 장착하고 있죠. 2017년 1월 에어쇼 도중 태국 공군의 Gripen C/D 한대가 사고로 추락하여 현재 태국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Gripen의 숫자는 11대로 줄어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역주)
7일 동안 중국 공군의 J-11과 태국 공군의 그리펜은 쉴새 없이 뒤엉켰다. 훈련에 참가했던 한 중국 파일럿은 12월 9일 중국 서북 공업대학(西北工业大学)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러시아 Su-27의 파생형인 중국의 J-11이 근접전에서 우월한 능력을 지닌 전투기임이 판명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국이 보유하고 있는 JAS-39 그리펜은 '시계 외 공중전'으로 불리는 장거리 전투에서 J-11을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서북 공업대학에서 있었던 이 설명회를 가장 먼저 보도한 곳은 항공 웹사이트인 Alert 5였다.
모의 전투 첫째 날, 중국 J-11 편대와 태국 그리펜(Gripen) 편대는 시계 내(visual-range) 근접전을 벌였다. 결과는 중국 공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강력한 쌍발 엔진을 장착한데다 내장 기총과 아마도 PL-8일 가능성이 높은 적외선 유도형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까지 탑재하고 있던 J-11은 단 한대의 손실도 입지 않은 채 16대의 그리펜을 "격추"시켰다.
태국 공군이 보유한 단발 엔진 기체 그리펜은 근접전을 대비해 내장 기총과 AIM-9 적외선 유도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다른 전투기들에 비해 Gripen의 추력 대 중량비(thrust-to-weight ratio)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낮은 추력 대 중량비는 결국 근접전에서 필수적 요소인 기동성을 제한한다.
(추력대중량비란 전투기의 무게를(Weight) 엔진의 추력(Thrust)으로 나눴을 때 계산되는 값을 뜻합니다. 이 추력 대 중량비는 전투기의 가속성능과 기동성 그리고 선회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로써 전투기의 중량과 엔진의 파워에서 나오는 추력 수치만 가지고도 간단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구형 Gripen C/D의 추력 대 중량비는 0.97정도 나오는데요. J-11의 원형인 Su-27 플랭커의 추력 대 중량비가 1.07정도라고 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Gripen NG라고 불리는 신형 Gripen E/F의 경우 추력 대 중량비가 1.249로 급격하게 향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중국의 J-11과 신형 Gripen E/F가 다시 근접전을 펼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참고로 KF-21 보라매의 추력 대 중량비는 1.4에 가까울 정도로 높습니다. 추력 대 중량비로만 따지면 KF-21은 F-22나 유로파이터 타이푼보다 오히려 약간 더 높을 정도입니다. 추력 대 중량비가 가장 우수한 전투기는 F-15E로 1.55 정도로 추정됩니다. 상세한 내용은 KKMD 189화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역주)
훈련 둘째 날, 중국 파일럿들은 적기 9대를 격추하고 자신들도 1대를 잃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은 첫날처럼 완벽한 성공을 재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마침내 이 합동훈련은 장거리 시계 외 공중전(beyond-visual-range) 과정으로 전환되었는데, 여기서 AIM-120 중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구형 Gripen C/D는 중국산 중거리 미사일 PL-12로 무장한 J-11보다 더 우수한 전투기임을 입증했다.
훈련 셋째 날, 태국 공군 파일럿들은 19대의 J-11을 격추시키고 3대의 Gripen을 잃었다. 훈련이 끝나는 마지막 3일 동안, 태국 파일럿들은 22대의 중국 전투기를 격추시켰고 그들 자신은 셋째 날 잃었던 3대의 Gripen 이후 단 한대도 격추당하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집계한 최종 결과는 태국 공군이 승리했음을 보여주었다. 태국 공군의 Gripen C/D가 총 42대의 J-11을 격추시킨 반면, 중국 공군의 J-11은 단지 34대의 Gripen C/D만을 격추시킬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Gripen C/D에 탑승한 태국 파일럿들의 격추 횟수 중 88%는 최소한 30km를 넘는 거리에서 이루어진 반면, 같은 거리에서 J-11에 탑승한 중국 파일럿들의 격추율은 14%에 그쳤다. 또한 Gripen C/D는 50km 이상의 거리에서도 J-11 10대를 격추시켰지만 이 거리에서 Gripen C/D를 격추시킨 J-11은 단 한 대도 없었다.
문제의 프레젠테이션을 인용한 항공 웹사이트 Alert 5는 "중국 파일럿들의 상황인식 능력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주변 360도 모두를 경계해야 하는데 그들은 전투기 전방에만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의훈련에서 다른 항공기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J-11이었지만 다른 항공기와 전혀 손발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발사된 미사일을 피하는 경험이 거의 전무했다"고 Alert 5 말을 이었다. "미사일에 대한 그들의 대응은 너무나도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이어서 서로 다른 사정거리를 지닌 미사일들을 어떻게 회피해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자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더 나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05년경 중국 공군은 미 공군의 Red Flag 훈련을 모방하여 현실감 있는 공중전 훈련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 행사들을 통해서도 여전히 중국 공군은 최고의 중국제 전투기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숙련된 조종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 국방정보국(USDIA)은 2019년 1월에 발표한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한 보고서에서 "중국 고위 관료들에 의해 작성된 수많은 전문적인 글과 연설들은 중국 공군 스스로가 과거의 훈련 방식을 통해서는 조종사들과 다른 전문 인력들을 실전에 대비시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중국 공군의 훈련 방식이 결국 다양한 방면에서의 공중전 능력 약화라는 결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보고서에서 "중국군은 자국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량과 전통적인 항공 강국 조종사들의 기량 사이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숙련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중국 공군에서 복무했던 한 전직 사령관은 "이러한 훈련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군이) 훈련을 할 때, '보여주기식 훈련'이나 '마지못해 시늉이나 하는 훈련'이 아니라 '실제 전투를 위한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미 국방정보국(DIA)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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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21년 8월 4일 미국의 국제정세 전문지 National Interest가 게재한 “This Swedish-Designed Fighter Proved That China’s Air Force Is Far From Invincible. (스웨덴이 설계한 이 전투기는 중국 공군이 ‘무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입증해 주었다)”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National Interest도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이 만드는 전투기의 성능은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일반적으로 ‘Made in China’는 조롱의 표현으로 쓰이고 있지만 상대방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국가에겐 패배만이 있을 뿐이겠죠. 대한민국에게 있어 군사적으로 비대해지는 중국은 결코 바람직한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하고요.
현대 공중전에서 제공권 장악을 위해 중요한 요소는 근접전이 아니라 시계 외 공중전(BVR) 능력이라는 사실은 상식입니다. 중화민족주의에 심취한 중국 밀덕들은 J-11이 근접전에서 Gripen을 압도하지 않았냐며 자기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겠지만 30km 거리에서 Gripen의 격추율이 88%였던데 비해 J-11의 격추율은 14%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더구나 거리가 50km로 떨어졌을 때 J-11은 Gripen을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Gripen은 무려 10대의 J-11을 격추했다는 사실은 실전이었다면 중국은 그야말로 ‘참패’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 파일럿의 낮은 숙련도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인적 요소로 치부하기엔 중국이 너무 심각한 참패를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국 공군 파일럿들의 기량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순수하게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J-11이 스웨덴의 Gripen C/D에 밀리는 측면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분석이며 태국 공군이 출동시킨 Gripen C/D는 개량되기 전 모델이라는 사실 또한 중국에게 더 뼈아프게 느껴지는 부분이 될 것입니다.
제가 만든 추력 대 중량비와 익면하중으로 분석해 본 그래프에서도 알 수 있듯이 Gripen C/D의 개량형인 Gripen NG(E/F)의 항공역학적 성능은 FA-50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물론 이는 여러 변수를 배제시키고 단순하게 항공역학적 성능만을 두고 비교하는 것입니다만 FA-50도 개량여부에 따라서는 시계 외 공중전(BVR)으로 중국에서 500대나 만들어진 J-11을 상대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수한 성능의 레이더와(AESA?) 데이터 링크로 유도되는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갖춘 FA-50이라면 50km 밖에서 J-11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전장을 이탈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뜻이죠. 물론 Gripen의 경우처럼 근접전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멀리서 치고 빠지는 전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세적 제공 임무는 FA-50이 아니라 KF-21이 맡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FA-50만 60대이고 이름만 고등훈련기이지 즉각적으로 FA-50으로 사용될 수 있는 TA-50도 40대나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까운 자원들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100대나 만든 전투기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공군 수뇌부의 역할이 아닐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포스팅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https://youtu.be/OVGCVBkUbl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