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1일, 방위사업청은 KF-21 보라매 관련 영상 하나를 업로드 했습니다. 지난 1월 12일, KF-21 시제 2호기가 고받음각 조종안정성 비행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내용의 영상이었는데요.
High Angle of Attack 줄여서 High AOA라고 불리는 고받음각 비행 테스트 성공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궁금한 부분이었고요.
KF-21 보라매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문의해볼까 하다가 직접 전투기를 조종해 왔고 관련된 전문 교육을 받은 공군 조종사 이상의 전문가는 없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쳐 전직 공군 조종사 출신 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보았습니다.
FA-50 그리고 KF-21 보라매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해당 전문가는 다소 귀찮을 수 있는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구두로 답변해 주셨는데요. 시청자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기 좋게 제가 다듬고 정리해 봤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내용은 공군과는 관계없는 전문가 개인적 의견이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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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 먼저 국내 주요 전투기를 대부분 경험해 본 조종사의 관점에서 고받음각 비행의 의미와 근접 공중전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이(High) 앵글 오브 어택(Angle of Attack: AOA) 고받음각은 고속 비행을 할 때 보다는 근접 공중전에 필수인 저속 비행을 할 때 문제가 된다. 보잉이 만들고 있는 T-7A의 윙락(wing rock) 현상도 저속에서 고받음각 비행을 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멀리서 적기를 격추시킨다는 시계 외 공중전(BVR) 개념이 보편화된 현대 공중전에서 근접 공중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이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근접 공중전을 상정하지 않았던 미 공군의 F-4 팬텀 초기형에는 기총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복 작전을 펼쳤던 MiG기들에게 뜻하지 않게 격추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미 공군은 먼 곳에서 이륙하여 적진 깊숙한 종심을 타격하는 작전을 주로 펼쳤기 때문에 이동 경로가 노출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연료마저 넉넉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북베트남 공군은 전투행동반경이 넓지 않아도 짧은 활주로에서 이륙이 가능하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MiG 전투기들을 매복시켰다가 F-4 팬텀이 지나갈 때 공격하는 전술을 펼쳤고요.
기총 대신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AIM-9 사이드와인더 열추적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F-4 팬텀이었지만 매복해 있다가 근거리에서 등장한 MiG기에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AIM-9 사이드와인더 적외선 미사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면 가까이 비행하면 열추적 미사일의 조준이 방해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MiG기들은 하나 같이 낮은 고도로 비행을 하는 바람에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었습니다. 결국 F-4 팬텀에 근접 공중전을 대비한 기총이 장착된 이후에야 비로소 미 공군은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명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면 지금까지도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명중률은 30%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와 있을 정도죠. 여기 더해 미 공군 수뇌부가 ‘장거리 교전 수칙’까지 추가시키면서 시계 외 공중전(BVR)보다는 근접 공중전을 시도해야 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인도에서 운영되는 파일럿 양성학교 Tides Academy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BVR 미사일과 스텔스 기술의 우세로 인해 현대 공중전에서 근접 공중전을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BVR 미사일이 고장 나거나 고갈된 경우, 교전 규칙에 따라 장거리 사격이 금지된 경우, 적군이 아군과 유사하거나 보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항공경찰 임무 같은 경우에도 여전히 근접 공중전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군은 지금도 근접 공중전을 훈련하고 연습시키고 있다.』 역주)
레이더로 유도되는 현대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에는 큰 단점이 하나 있는데 비행체가 90도 각도로 꺾어서 비행을 하면 탐지하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레이더파가 앞뒤로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목표물의 위치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상대 거리는 그대로 유지한 채 옆으로 급격하게 멀어지는 목표물의 위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맹점에 근거한 전술이며 현재 대한민국 공군 F-16 파일럿들이 많이 운용하는 전술 중 하나다.
적을 향해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한 후 나를 향해 대응 사격된 미사일의 성능을 파악하고 가까이 접근했을 때 90도 꺾는 기동을 연거푸 시행해 추적을 방해하고 에너지 고갈을 노리게 된다. 목표물을 상실하고 에너지도 소모한 미사일은 자폭할 수밖에 없고 다른 아군 편대기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의 미사일 소모를 유도한다. 이렇게 서로 미사일을 소모하면서 접근하게 되면 결국 근접 공중전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결론적으로 모든 공중전은 근접 공중전까지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육군이 처음엔 포를 쏴대다가 가까워지면 돌격 소총을 사용하고 최후에는 권총으로 싸워야 하듯이 말이다.
(현재 AIM-120 암람과 미티어 같은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들은 대부분 레이더 시커로 목표물을 추적합니다. 물론 미티어는 데이터 링크로 목표물에 대한 중간 업데이트가 가능하지만 종말단계에서는 레이더 탐색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보통 능동형 레이더 시커가 작동하는 범위는 20㎞ 내외로 공군 파일럿이 설명하고 있는 90도 회피 기동은 대부분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체가 뿜어내는 열을 통해 목표물을 추적하는 AIM-9X나 IRIS-T 같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들은 플레어 외에는 기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주)
[인터뷰 질문] 근접 공중전의 필요성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근접 공중전에서 고받음각(High AOA) 성능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가?
F-16처럼 추력이 뛰어나고 우수한 기동성을 지닌 현대 전투기들이 벌이는 근접 공중전의 양상은 서로를 맴돌면서 공중으로 상승하는 형태로 벌어진다. 400~450노트(시속 740㎞~830㎞)의 속도로 마치 뱀이 똬리를 트는 것처럼 상승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꼬리를 잡는 것이다. 서로 기수를 들어올린 채 상승하는 두 전투기들 중 고받음각(High AOA) 비행능력이 떨어지는 쪽의 기수가 먼저 아래로 향하거나 실속(Stall) 상태로 접어들게 되고 그 결과 꼬리를 잡히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견해로써, BVR 미사일로 멀리서 상대방을 격추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으며 다소 점잖지 못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BVR 미사일은 일종의 ‘선빵’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선빵’을 날리고 적이 회피 기동을 하는 동안 이어질 근접 전투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더 클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뷰 질문] 방위사업청이 공개한 KF-21 보라매의 고받음각 비행은 다른 전투기들과 비교해본다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FA-50의 고받음각 비행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필리핀 공군의 FA-50PH가 모의 근접 공중전에서 F-22 랩터를 가상 격추시킨 사건이 있었다. 추력 편향이 가능한 강력한 엔진을 갖추고 있는 F-22 랩터는 엄청난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근접 공중전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F-22 랩터에 여러 페널티를 적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FA-50이 저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고받음각 비행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분석들도 있다.
(인도 파일럿 양성학교 Tides Academy 홈페이지 내용 중에 근접 공중전이 필요한 경우로 “적기가 아군과 유사하거나 보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를 언급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FA-50이 정말 어쩔 수 없이 F-22 랩터 급 전투기를 상대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면 최대한 근접 공중전을 강요할 수 있어야 조금이라도 생존율이 올라간다는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BVR 미사일의 명중률이 생각보다 낮고, 레이더 시커의 맹점을 파고드는 90도 기동으로 BVR 미사일을 소진시키는 방법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스텔스 전투기라도 일단 공격을 시작하게 되면 레이더에 탐지 된다는 사실 등으로 유추해 본다면 최후의 방어선으로 등장한 FA-50이 종심 깊숙이 침투한 F-22 같은 첨단 전투기와 근접 공중전에서 조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짓기도 어렵습니다. 필리핀 공군소속 FA-50PH는 그런 근접 공중전 상황에서 F-22를 상대로 폭스Fox 2를 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한 셈이죠. 역주)
https://youtu.be/cDEI_rf8-QU?si=94ODNwyfZhqwdN8w
FA-50이 F-16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정 부분, 예를 들면 저속에서의 기동성 등에서 F-16보다 더 우수한 부분도 보인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아마도 F-16이 다목적 전투기로 진화하면서 본래의 기동성을 일부 잃은 탓도 있겠지만 FA-50과 F-16 양쪽 모두를 경험해 본 파일럿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FA-50의 비행 특성을 상당 부분 이어 받고 있는 KF-21 보라매 역시 F-16에서 볼 수 있는 우수한 고받음각 비행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FA-50 비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나는 KF-21이 달성한 70도 보다 훨씬 더 높은 90도 상승각도로 비행을 시도한 적이 있다. 기수를 90도까지 들어올리고 핸즈 프리(Hands Free) 상태로 놔두면 안정성이 우수한 기체들은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기수를 떨어트리기(Nose down) 시작한다. FA-50이 그런 비행 특성을 보여주는데 KF-21도 70도에서 천천히 기수를 떨어트리는 테스트를 시행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여담이지만 안정성보다 기동성에 초점을 둔 일부 기체들은 무게 중심이 뒤에 있고 이런 기체들이 한계를 넘은 고받음각 비행을 하게 되면 바람에 딱지가 뒤집어지듯이 기수를 든 채로 뒤집어질 수 있다. 이때 배면 비행 상태가 되면서 전투기는 실속과 동시에 조종불능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데 실제로 우리 공군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KF-21 보라매가 고받음각 비행 테스트를 하면서 꼬리 날개 쪽에 낙하산을 장착한 이유는 고받음각 테스트 비행 시 혹시라도 180도로 뒤집혀 실속 하는 경우, 낙하산을 폄으로써 공기 저항을 일으키고 그 결과 기수를 아래로 떨어트릴(Nose down) 수 있게 되면 자세회복(Recovery)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 F-16의 유전자와 비행 특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FA-50 파이팅 이글이 근접 공중전에서 매우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하고 있는 국산 중거리,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물론 미국제 AIM-120 암람, AIM-9X 사이드와인더 그리고 미티어, IRIS-T와 같은 유럽제 공대공 미사일 통합까지 계획되어 있는 FA-50이 후방좌석 개조, 300갤런 연료 탱크 장착 및 공중급유 능력의 탑재로 전투행동반경까지 확장하게 된다면 F-16 부럽지 않은 전투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아울러 FA-50을 개발하며 습득한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되었기에 역시 F-16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KF-21 보라매도 이번 고받음각 비행 테스트를 통해 뛰어난 근접 공중전 능력의 편린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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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난 2024년 1월 12일, KF-21 시제 2호기를 대상으로 실시된 고받음각 조종안정성 비행 테스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전문가와 실시한 인터뷰를 정리해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공군 조종사 출신들이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스텔스 전투기와 시계 외 공중전용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근접 공중전과 전투기 기동성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로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기를 포착하고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킨다』는 전투교리는 생각만 해도 짜릿합니다. 이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개연성이 가장 높은 전투기로 미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공중우세기 F-22 랩터를 들 수 있다는 사실에 반대표를 던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F-22 랩터임에도 불구하고 저속으로 기동하며 근접 공중전을 할 때를 대비해 20㎜ M61A2 6열 기관포와 탄약을 480발이나 내장하고 있으며 저속에서의 기동성 향상을 위해 2차원 추력편향노즐(TVC)까지 탑재하고 있습니다. 즉, F-22 랩터 설계자들도 F-22가 언제든지 근접 공중전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 실제로 F-22 랩터는 다양한 기종들(FA-50 포함)과 근접 공중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623화 『F-35는 스텔스 전투기일 뿐 아직 5세대는 되지 못했다? 2029년으로 또 다시 연기된 블록 4 업그레이드의 비밀!』편을 시청하신 일부 시청자들은 제가 F-35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계시던데요. 스텔스 전투기 F-35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 공군은 다양한 공격 옵션을 지니게 됩니다. 다만, F-35는 블록 4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5세대 전투기로서의 성능을 ‘현재 시점에서는’ 발휘할 수 없으며 아직 기본적인 공대공/공대지 공격 능력만 지닌 스텔스 전투기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영상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분석으로는 현재 블록 3 버전의 F-35는 스텔스 성능을 십분 활용한 종심 타격, 즉 공대지 작전에 최적화된 기체입니다. 블록 4로 업그레이드 되기 전까지는 공중우세기 KF-21 보라매의 호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문제는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2029년으로 연기된 블록 4 기술개발에 22조가 넘는 비용이 들어가고, 미국이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 되겠지만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F-35를 블록 4로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도 엄청난 추가 비용이 청구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데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대한민국의 블록 4 개량 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너무나도 엄청난 추가 비용이 청구된다면 어쩔 수 없이 블록 3 버전의 F-35를 그대로 운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스텔스 종심 타격 전투기 F-35의 도입만큼이나 공중우세전투기 KF-21 보라매의 개량과 확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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