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 각국의 밀리터리 뉴스를 확인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Defense News가 전한 소식으로 2018년 12월 경전투기(LCA) 프로그램을 시작한 말레이시아가 무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입찰을 시작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입찰 마감시한은 2021년 9월 22일로 정해졌습니다.
KKMD 32화에서 말레이시아 경전투기 수주전 이야기를 처음 다룬 것이 2019년 2월 28일이었지만 이제 겨우 정보공개요청(RFI) 단계를 마쳤으니 정말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는 셈인데요. 물론 말레이시아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그렇지만 말레이시아 역시 주요 수출품목인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시킨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세계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2017년 이후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는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를 대상으로 성장한 경제력과 강력한 군사력을 내세운 이른바 ‘전랑외교(戰狼外交)’를 펼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고민은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5월 말, 중국 군용 수송기 16대가 말레이시아 해안선으로부터 60해리 떨어진 사라왁(Sarawak)주 동부 지역의 영유권 분쟁지역 위로 위협비행을 시도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되었지만 현재 말레이시아 공군의 실질적인 전술기(combat role aircraft) 전력은 보잉(Boeing)이 만든 F/A-18D 호넷 8대와 러시아제 Su-30MKM 플랭커 18대가 전부인 상황이죠.
미국의 군사전문지 Defense News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공군력 강화사업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전투기(LCA)사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FA-50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는 중국-파키스탄 합작의 JF-17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중국이 관여된 JF-17이 물망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성능이 우수한 FA-50이 유력해지는 것이 아니냐? 라는 관측을 하게 되지만 인도는 대한민국 FA-50에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테자스(Tejas)가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도계 유라시안 타임즈는 말레이시아에 입찰한 인도 Tejas Mk 1A는 AESA 레이더와 신형 항전장치들을 장착하고 있으며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포함한 다양한 무장을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도와 대한민국, 두 나라가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입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필요(needs)를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FA-50의 근본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 바로 중장거리 공대공 전투능력의 부재는 예전부터 저도 같이 지적해 왔던 약점인데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중장거리 공대공 전투능력의 장착을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참 답답한 문제라서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에게 FA-50에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통합이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답을 듣기는 했지만 KAI 엔지니어에게 직접 들은 답은 아니라서 이번 2021 MADEX 한국항공우주산업 부스에 가서 다시 한번 질문해 보려고 마음먹었죠.
말레이시아 경전투기 사업을 대비해서라도 FA-50에 암람(AMRAAM)을 장착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담당자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FA-50에 암람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사용중인 이스라엘제 EL/M 2032 레이더부터 더 우수한 성능을 지닌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요.
KAI 관계자로부터 FA-50에 미국제 암람을 통합하는데 있어 록히드 마틴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되느냐는 제 질문에 록히드 마틴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게 큰 장애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본인의 판단으로는 만약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요청한다면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응해줄 것이라는 말도 했고요.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 록히드가 암람 통합을 거부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더비(Derby)를 장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는데 물론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게는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제 더비(Derby)는 AIM-120A형보다 가벼우면서도 50km라는 비슷한 사정거리를 지니고 있는 공대공 미사일입니다. 데이터 링크 유도가 가능해서 조기경보기로 유도가 가능하고 실전경험이 많은 이스라엘 공군의 노하우가 듬뿍 녹아 들어 있어 신뢰도가 매우 높은 미사일입니다.
실제로 2006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크루젝스(Cruzex) 다국적 공군훈련에서, 브라질의 F-5M 1대가 프랑스 공군의 Mirage 2000N 2대를 더비 미사일을 사용해 격추한 전적이 있는데요. 당시 브라질 F-5M은 이스라엘제 더비 미사일을 발사했고 AESA 레이더를 장착한 브라질산 Embraer R-99 조기경보기가 데이터 링크로 이를 유도해 Mirage 2000N을 두 대나 격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처럼 종교적 이유로 이스라엘을 배척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더비(Derby) 미사일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남아에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 국가들이 많으니 미국산 암람(AMRAAM)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는데 록히드가 반대하지도 않는다면서 KAI는 왜 FA-50에 암람 통합을 하지 않고 있느냐는 제 질문에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재 KAI의 재정상황으로는 암람 통합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료 조사한 바에 따르면 FA-50에 암람을 통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300억대입니다. 한 대당이 아니라 전체 비용이 그 정도 됩니다. 300억이면 FA-50 한대 정도 비용인데 KAI 같은 대기업에 그 정도 돈이 없다고? 잘 이해가 안되더군요. 찌푸린 제 얼굴을 보고 담당자는 조곤조곤 설명을 했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게임 만드는 회사 같은 곳들은 매출대비 순 이익률이 70~80% 정도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KAI 같은 방산기업들은 매출에 비해 순이익 비율이 4~5%로 낮은 편입니다. 수주를 통해서 수 조원 단위의 매출이 있어도 생산이 진행되는 데는 4~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고 그 동안 연구 개발비와 인건비는 계속 지출을 해야하다 보니 순 이익률이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잘 나가는 게임회사보다 순 이익이 작은 것이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유자금이 넉넉하지 못한 KAI이며 FA-50에 암람을 통합하는 비용 300억이 끝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라고 관계자는 지적했습니다. 암람을 통합하고 나면 실제 기체에 장착하여 비행 시험을 하면서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 무시 못할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요군인 공군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FA-50에 암람을 통합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KAI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담당자의 이야기는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FA-50 개발이나 KF-21 개발사업들을 KAI의 배만 불리는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도 댓글을 통해 “KAI에게 뭐 받아먹은 거라도 있느냐?”는 욕을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잘 믿지 않을 것이라고요. 특히 시청자들 중 일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제가 입장이 난처할 때가 많다고 말이죠.
제 이야기를 들은 한국항공우주산업 담당자는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한 반감에 대한 상당부분 책임은 KAI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요.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 현대우주항공, 삼성항공우주, 대우중공업 등 3대 대기업의 항공기 사업부문을 국가가 전략적 관점에서 모으면서 탄생시킨 결과물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보니 국가의 전략적 지원도 많이 받았고 당시 선배들이 어떻게 보면 차별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지원들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쟁사들로부터 많은 원망을 받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KAI가 엔지니어 집단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도 있다는 진단도 내렸습니다. 제가 들은 내용 그대로 전달해 드리면 ‘기본적으로 엔지니어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은 사람들인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목소리 높여 가르치려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불필요한 적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의외로 냉정한 자기평가에 오히려 듣던 제가 놀랐습니다.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돈 문제” 때문에 FA-50에 AIM-120 암람 통합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담당자의 개인적 의견이기는 합니다만 미국 정부나 록히드 마틴이 FA-50에 암람을 통합하는 작업을 방해할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소요군인 우리 공군이 FA-50에 암람 통합을 지원해 줄 것인가가 중요한 변수인데 F-35 도입, KF-21개발, KF-16 및 F-15K 업그레이드 사업까지 겹친 상황에서 미처 FA-50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FA-50에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통합되지 못한다면 인도의 Tejas에게 무릎을 꿇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어부지리를 살리지 못하고 죽 쒀서 남 주는 꼴이 되겠죠. 아마 인도 Tejas 대표단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에게 FA-50의 이런 약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략을 쓸 것입니다. 아무쪼록 FA-50에 암람을 통합시킬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는 묘안이 나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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