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소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올해 2023년부터 미국 보잉(Boeing)이 만든 '잠수함 킬러' P-8 포세이돈이 6대 도입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2023년 9월 6일 북한이 신형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진수하기 이전부터 대잠초계기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고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능력 개발을 우려하고 있었던 우리 군은 2018년 1조 9천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미국 보잉으로부터 잠수함 잡는 대잠초계기 P-8 포세이돈 6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ADEX 야외 전시장을 방문했던 분들이라면 눈에 익은 형태지만 등에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B-737 항공기를 만나셨을 것입니다. 그 기체가 바로 P-8 포세이돈인데요. 문제는 ADEX 2023 야외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P-8 포세이돈에는 성조기 마크와 함께 US Navy라는 선명한 글자를 볼 수 있었다는데 있습니다.
분명히 올해 2023년부터 순차적으로 6대의 P-8 포세이돈이 도입되어야 하고 2024년이 되기까지 이제 불과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ADEX 2023에 전시되어 있어야 할 P-8 포세이돈은 미 해군 소속이 아닌 대한민국 해군 소속이어야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있던 업계 관계자에게 그 자초지종을 설명 들었고 이후 항공기 개조 전문가와 함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요. 항공기 개조 전문가는 보잉(Boeing)이라는 거대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대형 수송기와 민간 여객기를 군용 항공기로 개조하는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해당 전문가는 보잉(Boing) 737 맥스가 두 차례나 추락하면서 수백 명의 인명 손실을 초래한 사건을 예로 들며 보잉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석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Down fall: The Case Against Boeing』을 찾아 보시면 전문가가 지적하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먼저 미 정부가 보증을 서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는 P-8 포세이돈의 국내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P-8 포세이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하여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고 빨라도 내년은 되어야 인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정부의 언질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도는 가능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향후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항공기 개조 전문가는 “P-8 포세이돈이 전력화된 시점이 2009년이며 전력화 이후 14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했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P-8 포세이돈은 미국, 인도, 뉴질랜드, 호주, 영국 공군 등에 의해 실전 배치되어 있는 중인데 이미 인도된 분량에 문제가 있었다면 외부적으로 알려졌을 개연성이 크지만 외신을 뒤져봐도 그런 내용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2022년 2월 3일에 미국 보잉 공장에서 대한민국 해군 P-8 포세이돈 1호기가 도색을 마친 채로 나온 것이 영상으로 포착되어 2022년 중으로 1호기가 도입될 것이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해군 P-8 포세이돈 1호기 도입이 뚜렷한 설명 없이 2024년으로 늦춰졌다는 이야기는 최근 인도되는 P-8 포세이돈 기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을 하게 만듭니다. 실전배치 이후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14년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기한 내 인도가 어려울 정도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보잉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항공기 개조 전문가는 덧붙였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보잉 737 맥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출시한 A320neo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보잉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보잉은 이에 대항마로 내세울 새로운 기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고 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기존 737 기체에 엔진만 교체한 737 맥스를 출시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크고 무거워진 엔진 때문에 기체 밸런스가 붕괴되었고 테스트 결과 자꾸 기수가 위로 들리는 현상이 발견됩니다. 이 때 강제적으로 기수를 아래로 낮춰주는 시스템이 개발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문제의 MCAS(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입니다.
하지만 보잉은 여기서 안전보다 수익을 앞세우는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연방 항공국의 빠른 승인과 조종사 추가교육에 들어가는 시간 및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보잉은 MCAS의 존재를 비밀에 붙입니다. 기존 737 기종을 몰던 파일럿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기체라며 737 맥스를 홍보하면서요. 그 결과 두 번의 추락사고를 일으킨 보잉 737 맥스의 파일럿들은 MCAS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밝혀집니다.
국내 항공기 개조 전문가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첫째.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파일럿이 모르는 시스템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보잉은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러한 기본 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The Seattle Times의 2019년 6월 22일자 기사” The inside story of MCAS How Boeing’s 737 MAX system gained power and lost safeguards (MCAS에 숨겨진 이야기. 보잉 737 맥스는 어떻게 개발되었으며 안전장치를 상실하게 되었나)”를 읽어 보면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항공기 개조 전문가는 만약 사고 비행기 파일럿들이 미리 MCAS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면 이상이 발생했을 때 최악의 경우 MCAS를 끄기만 해도 수동 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보잉은 파일럿들에게 MCAS의 존재를 숨기고 “기존 737 기체와 동일한 기체”라고 선전하기에 바빴고 그 결과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는 사고를 두 차례나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둘째.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항공기나 전투기는 특정 부품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를 대비해,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복수의 페일 세이프(Fail Safe)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보잉 737 맥스의 MCAS는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단일 센서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고 당시 항공기에 부착된 MCAS 센서가 날아가던 새와 부딪치는(Bird Strike) 통에 파손되었고 그 결과 비행기 기수가 계속 위로 들려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된 MCAS가 강제로 기수를 낮추게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고기 파일럿들이 아무리 기수를 잡아당기려 해도 요지부동이었다는 사실이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드러났던 것입니다. MCAS를 끄면 된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MCAS에 복수의 센서가 부착되어 있기만 했어도 피할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보잉 737 맥스 MCAS 사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더 놀랐던 것은 이 모든 것을 지휘했던 보잉 CEO 데니스 뮬런버그는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면서 750억에 이르는 퇴직금과 주식을 챙겨갔고 보잉은 미 법무부에게 3조 150억의 벌금을 내고 형사처벌을 피해갔다는 사실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도를 2년이나 미루고 있는 P-8 포세이돈, 윙락(wing-rock) 현상에 이어 비상탈출 시스템 문제로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는 T-7A 레드호크…… 하지만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있는 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보잉(Boeing)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정부나 의회가 그렇게 놔두지 않겠죠.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계속 보잉(Boeing)을 신뢰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국가가 얼마나 될까요? 거대한 댐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지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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