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7일 헤럴드경제신문은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초도 생산분을 40대에서 20대로 줄여야 한다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사업타당성 조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절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절충안을 살펴보면, 1차적으로 20대 초도 양산에 돌입하고 실제 공중 표적을 띄운 상태에서 표적을 맞추는 공대공 무장(미티어) 테스트에 성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20대 추가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KF-21 보라매 사업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한국국방연구원 KIDA 보고서 잠정 결론도 표현 정도가 완화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KF-21 보라매 사업에 정통한 복수의 업계 소식통으로부터 초도 양산 20대 감축 관련 정보들을 취합하여 살펴보고 있자니 한국국방연구원 KIDA의 주장에서 발견되는 허점이나 논리적 오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리가 배경이 된 오롯한 의견이 아니라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의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KKMD 626화 『아직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사업불확실성을 이유로 KF-21 양산숫자를 반으로 줄이자는 KIDA의 주장』 편에서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한국국방연구원 KIDA가 이야기하는 ‘KF-21 사업불확실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어 정통한 업계 소식통에게 문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드디어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았기에 시청자 여러분들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업계 소식통은 KIDA가 “첫째. 시제기 테스트 비행 중 발견된 기술적 문제들과 둘째. 미국의 대외 정책 변화에 따른 변수 같은 요소들 때문에 KF-21 보라매 사업 성공에 의문이 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전했습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6대의 시제기를 통한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된 소소한 오류들과 향후 미국의 정책 변경에 의해 발생될 지도 모르는 문제들 때문에 KF-21 보라매 사업 성공을 확신할 수 없고 따라서 양산 숫자를 40대에서 20대로 줄여서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한국국방연구원 KIDA가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잠깐 할말을 잊은 저는 소식통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오류와 문제점들을 찾아내려고 만드는 기체가 시제기 아닙니까?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아니면 KF-21 시제기 6대에서 심각한 오류라도 발견된 겁니까? 그리고 KF-X로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던 시기에도 미국의 정책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미국 정책 변화에 따른 변수를 걱정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네요.”
KF-21 보라매에 정통한 업계 소식통은 제 질문에 대해 “KF-21 보라매 시제기 테스트 비행에서 발견된 결함들은 ‘진동’ 정도의 경미한 것들이었으며 현재 모두 해결된 상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시제기가 초도 비행을 하기 전에 발견되고 해결된 문제들에 비한다면 시제기 테스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그야말로 경미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며 어떤 무기체계라도 시제품들은 오류나 결함을 나타내기 마련이라고 소식통은 언급했습니다.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해외에서 수입되는 ‘완제품’에 적용하는 평가 기준과 ‘개발이 진행 중인 국내 무기체계’에 적용하는 평가 기준을 서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한국국방연구원 KIDA는 이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하는 점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정통한 소식통은 공대공 장거리 유도미사일 미티어(Meteor) 발사성공을 조건으로 20대를 추가 양산해야 한다는 KIDA의 ‘조건부 양산’ 논리에도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이 설명해 준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미티어 미사일이 목표물을 타격할 때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기체에 탑재된 레이더가 목표물을 포착합니다. 임무(Mission) 컴퓨터는 레이더로부터 전달받은 목표물의 위치를 미티어 미사일에게 전달한 후 기체에서 분리합니다.
미티어 미사일은 양방향 데이터 링크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기체 임무 컴퓨터와 암호화된 신호를 주고 받으며 타격 대상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유도되고, 종말단계가 되면 자체적으로 능동 레이더 추적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KF-21 보라매의 임무 컴퓨터가 관여할 수 있는 작업은 목표물 위치를 알려준 뒤 본체에 간섭을 주지 않으면서 미티어를 분리시키는 작업과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미티어 미사일과 신호를 주고 받으며 종말단계 직전까지 유도하는 작업입니다. 종말단계 이후 타격 성공 여부는 순수하게 유도 미사일의 성능에 달려있고요.
KF-21 본체에 간섭을 주지 않으면서 미티어 미사일을 분리하는 테스트는 이미 성공리에 종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KF-21 보라매에게 남은 과제는 데이터 링크를 통해 알고리즘으로 암호화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미티어 미사일을 종말단계 직전까지 유도하는 작업을 성공시키는 것인데요. 문제는 이 알고리즘의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아닌 미티어를 생산한 MBDA라는 데 있습니다. 임무 컴퓨터에 미티어를 연결해 주는 작업, 영어로는 integration이라고 불리는 과정에 KAI는 관여할 수 없으며 오롯이 MBDA의 기술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이 목표물 타격에 성공하면 추가로 20대를 양산하겠다는 한국국방연구원 KIDA의 논리는 KF-21 추가 20대 양산 여부를 MBDA의 기술력에 의존하겠다는 이야기와 같은 논리가 된다는 뜻이죠.
혹시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레이더가 목표물을 포착하고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과정까지는 전투기 제조업체(KAI) 소관이지만 발사 이후 데이터 링크를 통해 암호화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종말단계까지 유도하고 최종 타격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은 유도 미사일 제조업체(MBDA)의 소관이라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KF-21 보라매 전투기 성능 그 자체에 문제가 없지만 MBDA의 과실이나 기술부족으로 공중 목표물 타격에 실패하는 경우라도 KF-21 보라매 초도 양산 물량이 20대로 한정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국방연구원 KIDA의 미티어 발사성공 조건부 양산 주장은 『무장』이 아닌 『전투기』를 양산하는 국가전략사업을 평가함에 있어 『전투기』성능평가와 『무장』성능평가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항목인지가 명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쪽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KF-21 보라매 사업에 정통한 또 다른 업계 소식통은 KF-21 보라매 블록 1과 블록 2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는데요. 시청자 댓글 중에 공대공 전투 능력만 보유하고 있는 블록 1은 어차피 수출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20대만 양산한다고 하더라도 KF-21 보라매 수출 가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업계 소식통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잘못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KF-21 블록 1도 공대지 공격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테스트를 통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에 따라 블록 2와 구분될 뿐입니다.
물론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천룡(天龍) 장공지(ALCM)나 아직 미국 쪽에서 통합시켜주지 않은 공대지 무장에 대한 통합 작업은 별도로 거쳐야겠지만 현재 FA-50에 통합되어 운용되고 있는 공대지 무장들은 KF-21 블록 1에서도 별 문제 없이 사용 가능하다고 KF-21에 정통한 업계 소식통은 밝혔습니다.
다만, 공대공 무장에 비해 공대지(공대함) 무장들은 훨씬 더 크고 무겁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KF-21 보라매가 장거리 공대지(공대함) 임무 수행 시 일반적인 370갤런 연료통(EFT)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480갤런 연료통(EFT)이 요구된다는 점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480갤런 연료통과 대형 공대지(공대함) 무장들간에 서로 간섭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설계 단계에서 이미 그러한 가능성을 고려해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설계했고 EMD 2단계(블록 2)에서 실제 테스트 비행을 통해 검증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업계 소식통은 이런 이유들로 40대가 블록 1 사양으로 초도 양산되더라도 별다른 개량작업 없이 공대지/공대함 공격이 가능한 멀티롤 전투기로 즉시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는 곧 초도 양산 물량 40대가 해외수출 대상이 될 수 있으며 KF-21 보라매 대당 가격 형성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40대를 양산하는 경우에 비해 20+20으로 양산하는 KF-21 보라매의 대당 생산가격이 더 비싸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업계 소식통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업계 소식통에게 40대 분량의 부품을 처음부터 구매하는 경우와 20대 분량으로 부품을 두 번 나누어 구매하는 경우, 규모의 경제가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전투기 생산라인은 임의대로 확장하거나 축소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각각 대당 생산가격에 제법 큰 차이가 생길 것 같다는 개인적 생각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해 봤습니다.
업계 소식통은 바잉 파워(Buying Power) 측면에서 20+20 추가 양산의 경우에도 대당 생산가격의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40대를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의 부품을 선 구매하는 경우 실현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20+20 추가 양산의 경우에도 실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후에 20대 추가 생산분이 있으니 부품 단가를 40대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부품 제작업체에게 부탁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주문량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부품 제작업체 입장에서 40대 규모의 가격으로 KAI에게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20대 추가 생산분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KAI 입장에서도 20대 추가 양산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MBDA의 역량에 따라 성사 여부가 좌우되는 『미티어 발사성공』이라는 조건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부품에 대한 선 구매 오더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발주와 동시에 선수금을 줘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40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당 생산비용이 800억대로 추정되는 KF-21 보라매의 부품 선수금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 분명하고 이에 대한 이자 등 금융 비용도 발생하게 됩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KAI가 단독으로 이 정도 금액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생각하기 어렵고요. 따라서 KIDA가 주장하는 20+20 추가 양산 형태로 가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20대 분량의 부품을 선 구매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 밖에 없고 부품 가격 상승에 따른 KF-21 대당 가격 상승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지금까지 KF-21 보라매 사업에 정통한 복수의 업계 소식통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국방연구원 KIDA가 제시하고 있는 『일차적으로 20대를 초도 양산하고 공대공 무장(미티어) 테스트에 성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20대를 추가 양산하자』는 방안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4위의 방산강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약속을 지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KF-21 보라매』를 선택할 것입니다. 육해공 플랫폼의 정점을 이루면서 한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 기술력의 총체를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첨단 전투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뒤를 잇는 방산강국이 되겠다는 선언과 국산 첨단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예산을 아끼기 위해 초도 양산 숫자를 줄이겠다는 결정은 서로 모순되는 관계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수십 년, 수백 년 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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