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경제/국방 분야 기자로 활동했던 지인으로부터 국제정세전문지 The Diplomat이 어떤 언론 매체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동안 저는 The Diplomat을 일본에서 발간되는 영자 국제정세 전문지라고 생각했고 KKMD에서도 그렇게 소개해 드렸는데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The Diplomat은 영국에서 발간되던 매체였지만 현재는 본사를 일본으로 이전한 상태이며 한때 매우 높은 공신력을 지니고 있어 유명 인사들이나 학자들이 앞다투어 글을 게재하던 매체였다고 합니다. 제가 ‘한때’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일본으로 이전한 이후 The Diplomat은 예전 같은 공신력과 인기를 누리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공신력과 인기가 예전 같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본사를 옮긴 것일 수도 있고요.
지난 9월 13일 The Diplomat은 싱가포르의 싱크탱크 『라자나트남 국제대학원』에서 군사 연구 프로그램 수석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토마스 림(Thomas Lim)이 기고한 기사 “How South Korea’s AS21 Redback IFV Won out in Australia (대한민국의 AS21 레드백이 호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방법)”을 게재했습니다.
기사 내용 중 특히 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It’s Not All K-Roses”, 문맥상 “K-방산의 미래, 장밋빛만은 아니다”로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챕터였습니다. K-방산에 대한 비판을 싣고 있는 기사들도 찾아달라는 일부 시청자들의 요구도 있었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격언처럼 K-방산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사 전체가 아닌 해당 챕터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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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대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분석해 보면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7월 26일, 한화디펜스가 호주를 대상으로 129대의 AS21 레드백(Redback) 보병전투장갑차(IFV)를 제공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며 복수의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호주에 대한 AS21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판매는 폴란드,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체결한 성공적인 방산거래를 통해 국제 무기 시장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경쟁자로서 대한민국의 명성을 더욱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AS21 레드백 판매 같은 성공적인 K-방산 수출 사례를 심층 분석해보면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성장해 올 수 있었던 몇 가지 주요 동인과 향후 K-방산에 닥쳐올 수도 있는 잠재적 우려 요인들을 알 수 있다. (중략)
K-방산의 미래, 장밋빛만은 아니다
한화디펜스가 호주 정부로부터 AS21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계약을 성공적으로 승인 받은 것은 국제 무기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특히 대한민국의 방산업계 및 그들의 역량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쉽사리 꿈꾸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범정부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한 대한민국은 자국 방산기업들이 전 세계 무기시장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틈새시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 결과 오늘날 K-방산은 일종의 특권적 산업으로 자리잡으며 폴란드와 유럽을 넘어 동남아시아와 중동으로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던 대한민국 방산업계 앞에 새로운 난관이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소소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우선 그 중 하나는 자신들이 생산해 내는 군용 자산을 지원할 수 있는 파워팩 관련 역량을 아직 완전하게 습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K2 흑표는 엔진을 작동시키기 위해 여전히 독일제 변속기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역시 미국에서 생산된 F414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고 있다. 2014년에는 한국군 군용 차량에 탑재하기 위해 개발된 국산 엔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는데 군사 전문가들은 자국 장갑차량에 사용할 수 있는 파워팩을 개발하기 위해 시작된 현지화 프로젝트가 좋지 않은 결과를 냈다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AS21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의 경우 현재 독일 MTU의 1000마력 8기통 디젤 엔진으로 구동되며 변속기 시스템도 여전히 독일 엔진 제조업체인 MTU 에어로 엔진(Aero Engines)에 의존하고 있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파워팩은 모든 군용 차량의 효과적인 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렇게 파워팩과 관련하여 드러난 잠재적 취약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살펴보면, 해외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근절하기 위해 AS21레드백 엔진을 100% 국산화한 버전을 개발하겠다는 합작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현재 항간에는 AS21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와 K9 자주포 모두에 탑재되어 있는 독일 MTU 엔진을 최종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내기업 STX가 개발한 국산 디젤 엔진 SMV1000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 방산업계의 민감한 화두였던 파워팩 개발 문제를 대한민국이 극복했는지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내 군사전문지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살펴보면 STX가 개발하고 있는 SMV1000 엔진은 상당히 높은 완성도와 독일제 MTU 엔진보다 훨씬 유리한 가격 경쟁력을 지니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좀더 상세한 내용은 번역을 마친 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주)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한국의 방위산업이 아직 방위체제의 완전한 자립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 신호다. 이러한 한계는 본질적으로 한국 방위산업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안보의 절대적 보장은 국방 분야에 있어서 모든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열망하는 것이지만,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해외 의존 패턴들은 잠재적 적들이 군사 작전을 입안하는데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약점들을 노출시켜 국가의 안보와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미래를 러시아, 미국 그리고 독일 같은 경쟁 국가들의 실수에 의존하는 도박을 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전자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휘말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후자인 미국과 독일은 국내 무기 산업 내부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세 나라가 세계 무기 시장에서 오랜 시간 누려왔던 명성을 생각해 본다면 러시아, 미국 그리고 독일의 방산기업들이 그들의 강점을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 될 것이다.
폴란드와 체결한 계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글로벌 방산 수요에서 발생한 틈새 시장을 기민하고 시기 적절하게 파악함으로써 군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 무대에서 좋은 입지와 명성을 얻었지만, 힘들게 얻어낸 "우수한 K-방산"이라는 명성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 무기시장에서 정당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영역을 부단히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
(세계 방산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K-방산을 둘러싼 언론들의 대대적인 과장 기사들은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의 미래를 장밋빛 가득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실제로 모든 징후들이 대한민국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국제 무기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상위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는 길은 여전히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루하고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길로 남아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무기 시장에서 남다른 입지를 진정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층을 확대하는 한편 군용 차량 제작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기회를 노리는 방식의 발전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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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제정세 전문지 The Diplomat이 2023년 9월 13일에 게재한 기사 중 일부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K-방산을 둘러싼 언론들의 대대적인 과장 기사들은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를 장밋빛 가득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실제로 모든 징후들이 대한민국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토마스 림의 지적에서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언론들의 과장 기사(hype)”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토마스 림은 현재 K-방산 열풍에 다소 거품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고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징후들이 대한민국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표현함으로써 세계 방산업계에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력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양욱 국내 군사전문가가 YTN에 출연해서 “현재 대한민국 방위산업 기술이 도달해 있는 수준은 미국보다는 확실하게 떨어지고 유럽 및 러시아와 상당 부분 대등하지만 일부 떨어지는 분야가 있을 정도”라고 언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일부 떨어지는 분야에 토마스 림이 지적한 군용 차량 파워팩이나 항공엔진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사실이기도 하고요.
미국, 러시아, 독일 그리고 프랑스로 대표되는 기존 방산 강국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국가들을 떠올려보면 이스라엘과 터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터키가 현대로템의 도움을 받아 개발하고 있는 주력전차 알타이(Altay)의 경우, 자체 능력으로 파워팩 개발이 어려워 1차 생산분에는 한국형 파워팩을 탑재하기로 결정했고 이스라엘의 주력전차 메르카바의 경우에도 미국산 콘티넨탈 디젤 엔진과 앨리슨 변속기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기사 번역 중 역주로 잠깐 언급했지만 STX가 개발하고 있는 SMV1000 엔진은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K9자주포와 AS21 레드백에 탑재되어 있는 MT881과 동급 성능을 목표로 하고 있는 STX의 SMV1000 엔진은 MT881과 동일한 8기통에 동일한 출력과 회전수 그리고 동일한 전자제어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사이즈도 동일합니다.
사실 STX 엔진은 독일 MT881 엔진을 국내에서 면허생산하고 있는데요. K9 자주포가 대량 생산되면서 독일 MTU 본사보다 더 많은 수량의 MT881 엔진을 국내에서 생산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제반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MT881 엔진의 국산화율은 90%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 결과 독일제 MT881 엔진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으로 국산 MT881 엔진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주에서 AS21 레드백이 KF41 링스를 누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국내에서 면허 생산된 MT881 엔진의 신뢰성과 가격이었다고 국내 군사전문가들이 분석할 정도죠.
STX엔진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 SMV1000 엔진 개발을 끝내겠다고 발표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SMV1000 엔진의 성능이 만족스럽고 가격이 적절하다면 폴란드에 수출되는 K9PL과 아랍에미리트(UAE)에 다시 입찰할 K9 자주포 그리고 향후 더 많은 나라로 수출될지도 모르는 AS21 레드백에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3 드론쇼코리아 컨퍼런스에서 방위사업청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협력하여 KF-21 보라매에도 사용된 F414급 엔진, 좀 더 상세하게 말하면 15,000파운드의 출력을 낼 수 있는 터보팬 엔진을 약 15년의 시간과 5조 원의 비용을 투자해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아직 사업 타당성 평가도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방위사업청과 산업통상자원부는 독자적인 항공엔진의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며 실제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항공엔진 개발사업보다 훨씬 더 리스크가 높다고 평가되었던 KF-21 보라매 사업과 누리호 위성발사체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K-방산이 세계에서 인정받으면서 정부부처 내부에서도 항공엔진에 중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형 항공엔진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K-방산. 하지만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라는 토마스 림의 주장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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